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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품 같은 운동기구… '몸' 얽히고 '예술' 설키다 [ART-플랫폼, 인천·(6)]

박경호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입력 2024-10-07 18:59 수정 2024-10-07 19:07

델핀 푸이에 'Gym Tonic'


프랑스 출신 작가 눈에 생소한 기구들
그래픽적·구조적 흥미 '영감'으로 작용
벤치·링 변형… '신체'에 새롭게 접근


델핀 푸이에
2023 TIAA 대상, 델핀 푸이에 'Pull Up'(2020). /델핀 푸이에 제공

두 개의 평행 사다리와 미끄럼틀처럼 보이는 목재 구조물에 평평한 형태의 기나긴 조각을 끼워 넣었다. 두 장의 얇은 천 사이에 굳지 않은 발포제를 압축해 피부와 같은 물질감을 부여하고, 천 표면에는 다양한 낙서를 했다. 이 압축된 형태의 천 끝에는 두 개의 팔이 달린 듯하다. 평평해지고 확장된 '신체'가 운동기구에 끼어 있거나, 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혹은 몸을 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7년 9~12월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8기) 국외 입주작가로 활동한 프랑스 출신 델핀 푸이에(Delphine Pouille)가 인천에 머물 당시 발표한 'Gym Tonic' 시리즈 가운데 조각 'Twists & Twists'다.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빈 등 유럽에서 주로 활동한 델핀 푸이에는 '생명'과 '몸'을 주제로 한 드로잉과 조각 작업에 집중해왔다.

그런데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처음 한국을 방문한 작가의 눈길을 사로잡은 사물이 있었으니, 바로 인천 자유공원에 일렬로 늘어선 수십 개의 야외 운동기구다. 작가는 자신에겐 무척 생소했던 자유공원의 야외 운동기구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곤, 프랑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와의 관계가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델핀 푸이에
델핀 푸이에 'Gym Tonic' 중 'Twists & Twists'(2017). /델핀 푸이에 제공

작가는 벤치와 링으로 이뤄진 운동기구를 변형시키고, 몸(전체 또는 일부)이나 근육 등과 얽히게 했다. 신체에 대한 또 다른 접근 방식의 발견이었다.

시리즈의 제목 'Gym Tonic'은 1980년대 프랑스 에어로빅 TV 프로그램 제목이라고 한다. 델핀 푸이에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당시 작업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인천 자유공원에 일렬로 배치된 운동기구들이 그래픽적이고 구조적 관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때론 그것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 없어 재밌는 모순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 운동기구들은 사회에 대한 은밀한 단서 같기도 했어요. 인천에서는 주로 노인들이 몸 관리를 위해 사용했지만, 최근 야외 운동기구가 많이 생긴 프랑스에서는 젊고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강도 높은 훈련을 위해 사용합니다. 파리 교외에서는 난민들이 야외 운동기구를 이용해 임시 대피소를 만들기도 했어요. 이런 운동기구들을 사회적 조각으로 생각합니다."

작가는 인천아트플랫폼 주변의 차분한 분위기를 즐겼다고 한다. 아름다운 저층 건물들, 멋진 카페들, 좋은 식당들, 인천차이나타운과 신포시장을 거의 매일 걸어다녔다. 자유공원에서는 운동기구 사진을 찍고 매일 오후 6시에 열린 공공 에어로빅 프로그램을 촬영했다고 한다. 인천에선 'Gym Tonic' 시리즈 외에도 많은 사진, 비디오, 음성 기록을 남겼다.

작가가 한국에서 찍은 사진들은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잠재적 영감의 원천으로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작가는 "이처럼 흡수한 여러 요소는 천천히 머릿속에 들어가고 제 작업에 스며들어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 후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또 다른 작품 'Pull Up'으로 지난해 대만 타오위안 미술관이 주관한 '2023 타오위안 국제 미술상'(TIAA) 대상을 수상했다. 2020년 벨기에에서 만든 이 작품은 회색 폼 표면을 잘라 만든 조각으로, 거대한 요가 매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품에 나타난 인물은 건물 구조에 매달려 있는 머리 없는 몸의 형태로, 철봉에 매달려 운동하는 자세인 것 같기도 하다. 피로감과 소진의 개념을 담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Pull Up'은 사실 'Gym Tonic' 프로젝트의 연장선"이라며 "'Gym Tonic'은 새로운 형식적, 재료적, 개념적 관점을 열어준 일종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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