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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한강의 노벨문학상

윤인수
윤인수 논설실장 isyoon@kyeongin.com
입력 2024-10-1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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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한강의 시간'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10일 오후 '노벨문학상 한강'을 발표하자 나라와 국민 전체가 오래된 염원을 성취한 감동에 휩싸인 주말을 보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대한민국 축구 월드컵 4강, 봉준호와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BTS의 빌보드 차트 1위보다도 더 벅차게 한국인의 심장을 울렸다. 한국인의 노벨상 갈증이 그만큼 지극했다.

한국인에게 노벨상은 세계 문명과 문화의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척도였다. 전쟁에서 간신히 생존한 휴전국의 국민으로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G10 국가로 성장한 자부심이 높았던 만큼, 노벨상 부재로 인한 비주류의 자격지심도 깊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에 환호했지만 물리·화학·생리의학·문학·경제분야의 수상 갈증은 더 심해졌다.

한때 줄기세포 영웅 황우석을 노벨상 후보로 작정하고 밀었던 국민 여론의 배경이었다. 독보적인 근현대사의 간난신고 서사 때문에 문학상은 수상이 유력한 분야로 주목받았다. 노벨상 발표 즈음이면 고은 시인의 안성 집필실에 기자들이 몰려들기를 몇해를 반복했다. 수원시는 아예 광교에 고은 집필실을 마련해주고 노벨문학상 산실의 도시를 꿈꾸기도 했다. 불발될 때마다 언론들은 장폴 사르트르의 노벨문학상 거부 명분을 인용해 노벨상의 의미와 가치를 폄하하는 자위성 보도를 반복했는데, 초라한 자격지심의 발로일 뿐이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국민적 자격지심을 한방에 날려버린 문화적 성취다. 5·18, 4·3 등 비극적인 현대사의 심연을 처절하게 응시하고 묵상한 작품들에서 노벨상 위원회는 인간과 인간성의 원형을 보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죽음이 실려 나가고 그러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즐거울까." 일체의 수상 인터뷰를 거절하는 한강의 수상 태도가 묵직하다. 자신의 문학을 노벨상에 가두지 않겠다는 의지일 테다.



문학가는 당대의 사제다. 신념에 따라 신탁은 엇갈리지만 당대의 인간이 나아갈 길을 밝힌다. 역동적인 한국은 다양한 신탁이 가능한 문학 만신들의 놀이터다. 한국 문화의 세계적 보편성에 눈 뜬 젊은 작가들이 즐비할 테다. 한 세기 가까이 김씨 독재 서사가 누적된 북한은 문학의 처녀림이자 보고다. 통일이 되면 북한 문학이 인류를 경악시킬 것이다. '한강의 기적'이 한국어 문학에 세계의 문을 활짝 열었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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