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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밸류업 발목 잡는 것은

입력 2024-10-15 20:09

부담해야 할 경영상 의무와 책임 회피하고
많은 보수 챙기는 미등기임원 지배주주들
1997년 외환위기때 경제위기 초래한 주범
한국판 주주자본주의 온존하면 성장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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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금융투자세(금투세) 시행일이 두 달여 앞이나 아직 설왕설래이다.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에 투자해서 얻은 일정액 이상의 소득 20∼25%를 징수하는 금융투자 소득세로 문재인정부 때인 2020년에 자본시장 선진화 일환으로 도입되어 작년부터 시행하려다 다시 2025년 1월로 미룬 것이다. 과세 형평성을 높이고 국가재정도 강화할 목적이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금투세 폐지 입장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의 주식 투자자 수는 1천424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 4명 중 1명이다. 또한 한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30% 이상이라 금투세가 자칫 외국인투자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 금투세를 폐지하면 저평가된 국내 기업 주식 가치의 밸류업(Corporate Value-up) 효과도 있어 긍정적이다.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경영권 공격세력의 악용 내지 국부(國富) 유출 우려도 완화할 수 있다. 대만은 주식 양도소득세를 도입하려다 주가 폭락으로 무산됐었다. 코너에 몰린 더불어민주당의 고민이 깊어 보인다.

재벌 2·3세의 문어발 등기이사 겸직 러시가 눈길을 끈다. 작년 말 기준 상장 대기업 총수 본인은 평균 2.8개, 오너 2·3세들은 2.5개 회사의 등기이사직을 맡고 있다. MZ세대 재벌 2·3세들이 챙기는 보수액도 다른 계열사 월급 사장들보다 훨씬 많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의 올해 총급여액은 90억원이 넘는데 다른 재벌들의 경우도 대동소이하다. 한편 한화의 김동관, 동선 형제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전무 등 1980년대생 재벌 3·4세들은 수백억원씩 들여 자사주 매입에 올인하고 있다. 경영권 세습을 위한 경험 쌓기와 자금확보도 중요하나 시장의 반응은 곱지 않다.

그러나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며 최고경영자보다 훨씬 높은 보수를 받는 지배 주주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이다. 작년 말에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총자산 5조원 이상) 지배구조 현황 분석'에 따르면 73개 대집단 소속 2천735개 계열회사들 중 총수 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한 회사는 136곳이었다. 하이트진로가 46.7%로 가장 높았고 이어 DB(23.8%), 유진(19.5%), 중흥건설(19.2%), 금호석유화학(15.4%) 순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2022년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50대 그룹 중 오너가 있는 42대 그룹 중 총수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그룹은 36곳인데 이 가운데 10명이 미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준용 DL(대림)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경영전략고문,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 김준기 DB그룹 창업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등이다. 2021년에 이재현, 신동빈, 이명희, 김승연 등 네 명의 미등기임원 보수 총액은 356억7천만원으로, 해당 그룹의 등기 대표이사 보수합계보다 월등하게 높다. 등기 임원으로서 부담해야 하는 경영상 의무와 책임은 회피하면서 등기 임원보다 더 많은 보수를 챙긴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사상 최대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미등기임원인 재벌총수들의 황제경영과 불투명경영을 꼽았다.

2019년에 미국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주주에 대한 봉사와 이윤 극대화라는 가치를 넘어 종업원과 고객, 납품업체 등 모든 이해 관계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BRT는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와 유사한 단체로 아마존, 애플,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보잉, GM 등을 아우르는 미국 내 200여 개 대기업 협의체이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도래와 함께 급부상했던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환됨을 예고한 것이다. 정보기술의 거함 IBM은 오불관언 '주주가치 극대화'에 충실했다 낭패했다.

고질적인 한국판 주주자본주의가 온존하는 한 금투세가 폐지되더라도 밸류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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