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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입력 2024-10-20 19:53

불황 허덕이던 온라인 서점 활기
'한강 작가' 대한민국 국격 높여
극단적 정치갈등에 좋은 기회 흘려
명태균·김건희 특검 검색어 압도
특별한 감동 그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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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국립군산대학교 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신드롬이 열흘 넘게 계속되고 있다. 엿새만에 한강 작가가 쓴 책은 100만부 넘게 팔렸다. 대형서점 판매 1위에서 10위를 죄다 한강 작가가 휩쓸었다. 지방서점은 책 수급에 애를 태우는 상황이다. 그동안 불황에 허덕이던 온라인 서점도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서버가 다운되고 예스24는 주식시장에서 한때 상한가를 기록했다. 도서 시장은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시장 전반에서 선순환을 기대하는 눈치다. 지난주 수요일 종로 교보문고에서 반가운 광경을 접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이들이 한강 작가 책을 구입하느라 북적였다. 이들은 매대 주변에 모여 어떤 책이 대표작인지를 서로에게 물으며 두 서 너 권씩 챙겼다. 반가운 건 대부분 6070세대라는 것이다. 이들 세대에게 한강은 낯설다. 그런데도 그들은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를 들고 서점을 나섰다. 자신이 읽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선물하려는 것인지를 떠나 흐뭇했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본지 오래다. 문고판 독서왕국으로 대표됐던 일본 또한 마찬가지다. 십 수 년 전 일본에 갈 때마다 책 읽는 일본인은 인상적이었다. 지하철이나 공원 벤치에서 책 읽는 광경은 부러웠다. 그러나 이제 일본인도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다. 최근 도쿄에 열흘 넘게 머물렀지만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한국,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 어느 나라나 흔한 풍경이다.

노벨문학상은 노벨상 6개 부문 중 하나지만 위상은 남다르다. 노벨문학상은 한 나라의 지적 산물이자 인문학 역량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건 1968년이다. 당시 일본은 경제적으로 급부상하던 시기였다. 서구사회는 일본을 돈만 아는 '이코노믹 동물'이라며 경멸했다. 허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그들은 '설국'을 읽으며 일본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노벨문학상이 일본의 격을 높여준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또한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단계 높였다. 주지하다시피 노벨상은 국력과 밀접하다. 노벨은 "수상자 국적을 고려하지 말라"고 유언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80% 이상 미국과 유럽에 집중돼 있다. 노벨문학상만 해도 아시아 수상 작가는 6명뿐이다. 일본 2명, 중국 2명, 한국 1명, 인도 1명이다. 수상 국가를 보면 알겠지만 국력과 무관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은 1968년, 중국은 2000년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은 2024년 수상했다. 일본, 중국, 한국 순으로 경제적인 부상 시기와 맞물려 있다. 인도 타고르의 1931년 아시아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은 예외다. 인도는 오랫동안 영국 식민 지배를 받았기에 영어라는 덕을 봤을 것이란 추정이다. 어쨌든 한강의 수상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한국 문학과 대한민국이 차지하는 위상도 달라질 것이다.

아쉬운 건 정치다. 이럴 때 정치가 조금만 잘했더라면 어땠을까.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한강과 대한민국 검색어는 급증했다. 세계인들이 한국과 한강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한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역량을 집중한다면 보다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허나 극단적인 정치 갈등 때문에 좋은 기회를 흘려보내고 있다. 국회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은 물론이고 명태균이나 김건희 특검이 한강과 한국 관련 검색어를 압도하고 있다. 세계인들에게 한국이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 지는 빤하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온 국민에게 안겨준 깜짝 선물이다. 나아가 K 콘텐츠에 방점을 찍었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그동안 K팝을 필두로 영화와 드라마, 발레, 음식까지 전방위로 확산하며 엄청난 시너지를 창출했다. 여기에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까지 물꼬를 텄다. 한강은 엊그제 한 시상 식장에서 "그토록 많은 분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셨던 지난 일주일은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다"고 했다. 특별한 감동이 한강 작가에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 어떠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간이다.



/임병식 국립군산대학교 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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