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후보직 사퇴·트럼프 총격 등
그 어느때보다 다사다난했던 美 대선
결과 어떻든 민주주의 위기징후 뚜렷
국민이익 도외시한 세력 설자리 없어
운명 개척해 나가는 시민의지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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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미국 대선이 불과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선거에 참여하는 '선거의 해'인 올해 미국 대선은 전 세계인이 가장 주목하는 선거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세계 전체가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성격의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초방빅 판세라 세계가 더욱 긴장하고 있다.
필자의 기억에 이번만큼 다사다난했던 미국 대선은 없었던 것 같다. 선거 과정에서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이 투표를 불과 100여 일 앞두고 후보직을 사퇴했고, 트럼프는 유세 도중 총격을 당하기도 했다.
또한 해리스와 트럼프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의미가 큰 선거다. 해리스가 당선되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등장하는 것이고, 트럼프가 승리하면 22·24대 대통령을 지낸 그로버 클리블랜드 이후 역사상 두 번째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 재기에 성공하는 드문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미국 대선 과정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의 징후들을 더욱 뚜렷하게 확인하게 된다. 특히 트럼프는 민주주의 가치와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발언들을 노골적으로 하는데 여전히 거리낌이 없다. 재선에 실패한 2020년 대선 때처럼 선거 직후 승리를 선언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자신이 졌을 경우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트럼프의 선동에 의해서 촉발된 2021년 의회 난입 사태에 맞먹는 심각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말할 것도 없지만, 다수 국민의 필요와 어려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민주당도 민주주의 발전에 저해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반민주적인 트럼프가 또 다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그만큼 상대당인 민주당과 후보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반증이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노동자와 서민의 필요에 둔감해지고 엘리트와 전문가들의 정당으로 바뀌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불사하고 불법 이민자에게 철퇴를 가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트럼프에게서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국민의 이익을 도외시한 세력은 민주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다.
인민 스스로 통치하는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는 그것이 처음 시작된 그리스의 도시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진 근대 이후, 어쩔 수 없이 선거를 통해서 대표를 선출하고 그들에게 의사결정을 맡기는 대의 민주주의로 변화했다. 오늘날 정치의 많은 문제들은 바로 이 선출된 대표들이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이나 시민들의 이익보다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파를 우선하는 데서 발생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본래적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일반 시민의 의지와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더 반영되도록 제도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위기의 원인을 선출된 대표와 제도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어쨌든 시민들의 지지와 선택으로 대표가 선출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등장의 배경에는 그들을 지지한 다수의 유권자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너무 당연해서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대표나 제도에만 책임을 돌리지 않고 민주주의의 본래 의미에 충실하게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살아있어야 민주주의도 자유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선거는 시민들의 그 의지를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다.
어쨌든 이번 미국 대선 결과가 향후 미국뿐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의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하다. 투표권도 없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남의 나라 선거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를 미국 유권자들이 조금이나마 알아줬으면 좋겠다.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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