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송도 지명 日帝가 붙였다"

정진오 정진오 기자 발행일 2005-12-15 제0면

송도국제도시의 법정동 명칭인 '송도(松島)'가 일제의 잔재란 논란과 관련, 송도란 이름은 일제가 송도유원지를 건설하면서 붙인 명칭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일제가 1926년부터 추진한 송도유원지 조성사업은 인천부(인천시)의 시책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으며, 일제는 또 문학산 일대까지를 포괄하는 480만평에 달하는 지역을 국제관광지대로 개발하려 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희환 인하대 강사는 이번 주 중으로 발간될 인천지역 문학계간지 '작가들' 겨울호에 기고한 '식민잔재 송도 지명을 대물림할 것인가'란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씨는 이 글에서 역사 저술가 이순우씨의 제보를 토대로 일제는 송도유원지 건설사업을 추진하면서 청량산의 이름까지도 '송도금강(松島金剛)'으로 붙일 정도로 송도란 명칭에 집착했다고 강조했다. 일제는 이 곳의 원래 이름인 '옥련'이란 명칭 대신 자신들이 본국에서 일반적으로 써오던 '송도'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1937년 8월6일자 '조선총독부 관보'에서 수인선 철로에 설치된 17개 정거장 이름을 소개하고 있는데, 일제는 여기서 종점인 인천항 정거장을 앞두고 수원기점 47㎞ 지점의 정거장을 '송도'로 명명하고 있다는 점도 새롭게 드러났다.

이순우씨가 찾아낸 월간잡지 경성잡필(京城雜筆) 1936년 12월호엔 송도유원지 건설사업은 인천부윤(인천시장) 나가이(永井)가 주축이 돼 추진했으며,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가졌던 경성(서울)의 유지들의 임해별장지 조성과도 맞물려 있었다는 사실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이 글은 당시 송도유원지 조성을 맡았던 송도유원주식회사의 상무가 쓴 것이어서 신빙성이 높다.

이런 탓에 8·15 해방직후인 1946년 인천시 지명위원회는 왜색 동명을 우리말로 고치면서 '송도정(松島町)'을 '옥련동'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희환씨는 “더 늦기 전에 '송도' 지명을 철회하고, 새로운 지명을 찾아야 한다”면서 “일본식인 '마쓰시마'란 이름의 '송도' 대신에 인천지역 고유의 역사와 자연을 간직한 지명인 '먼우금'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