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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자 故 장왕록박사 가족]아버지의 이름으로… 당신이 걷던길을 따라걷습니다

이유리 이유리 기자 발행일 2006-09-23 제17면

 여기, 한 가족이 있다. 바로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서강대학교 영문과 장영희(54) 교수의 가족이다. 아니, 장병우(60) 오티스엘리베이터(옛 오티스·LG) 사장의 가족이라고 해야하는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번역문학의 태두인 장왕록(서울대 명예교수·1924~1994년)박사의 가족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누구 한 사람의 이름을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 붙이기가 고민될 정도로, 이 가족 구성원 각각은 명성을 떨치고 있다.

먼저 빼어난 영문학자이자 번역작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에세이스트, 채택률 1위를 자랑하는 영어교과서 저자, 무엇보다 제자들에 대한 헌신으로 이름 높은 장영희 교수. 1살때 앓은 소아마비로 두 다리와 오른팔이 몹시 불편한 점, 유방암 발병-완쾌-척추암 발병으로 이어진 투병 이력에 대한 설명은 장 교수의 업적에 비해 부차적일 것이다.

장 교수의 친오빠 장병우 사장도 글로벌기업 CEO로서 이름이 높다. 1973년 당시 지금의 LG화학인 럭키에 입사해 32년간 LG그룹에서 일해오다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오른 신화적인 인물이다. 이처럼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이들 남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아버지 고(故)장왕록 박사에 대해 `사랑을 넘어선 존경'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8일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장왕록 박사의 저택.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인 장 박사의 문패가 그대로 달린 이 집에 장 교수와 장 사장은 바쁜 스케줄을 제쳐두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왕록 박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영문학자. 서울대학교 영문과에 30년간 근속하면서 미국문학 작품을 60편 가까이 번역한 공헌을 인정받아 콜롬비아대학에서 세계의 최고 번역가에게 수여하는 `손톤 와일더상'을 수상하기도 한 우리나라 최고의 번역문학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사랑받는 아버지였다. 장 사장이 아버지의 호인 `우보(又步·쉼없이 걷다)'를 좌우명으로 삼아 아버지의 삶을 일생의 `롤 모델'로 삼을 정도다. 지갑에서 꼬질꼬질하게 변해 버린 아버지의 옛 주민등록증을 자랑스럽게 꺼내 보여주며 “항상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본받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하는 장 사장의 모습은 굉장히 진지했다. 장 교수도 이에질세라 아버지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하루는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한 학생들이 아버지를 찾아와서 봐달라고 사정한 적이 있었죠. 물론 아버지는 단번에 거절했고, 우리를 시켜 그 학생들이 앉은 의자를 걸레로 깨끗이 닦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부끄럽게 살면 안된다는 말씀이셨죠.”

그렇게 자식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주던 장 박사는 94년 속초에서 수영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가족들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너무나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리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남매는 아버지의 유산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방법을 택했다.



바로 아버지의 역작을 오는 30일 부천에서 개관하는 `펄벅기념관'에 기증하는 것. 장박사는 펄벅의 작품을 독점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장본인이다. 한 작가의 작품을 같은 번역가가 20편 가량 번역한 것으로 세계적 기록을 세워, 한국에서의 펄벅 연구는 자연스럽게 장 박사의 공헌도와 연결되기에 이번 기증이 더욱 뜻깊다는 평가다.

“아버지의 유품이 우리 품을 떠나간다고 생각하니, 섭섭하죠. 하지만 펄벅연구에 기여한 아버지의 업적이 공적으로 인정받는 통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17권의 펄벅 번역본을 기증하기로 결정했습니다.”(장영희)

장 교수와 장 사장은 개관식에 참석, 책을 기증한 뒤 부천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은 가족의 품을 빠져나가는 것 이상으로 다시 아버지의 작품을 수집해야 한다는 결심에 가득하다. “헌책방에 일일이 연락해서 아버지의 책이 들어오는대로 사들여 모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딴 기념사업소를 만들어 그 책들을 전시하고 싶어요.”(장영희)

내로라할만큼 유명인이지만 장왕록 박사의 아들·딸로 불리는게 더 좋다고 말하는 그들. 앞으로의 삶도 아버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희망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가족의 보이지 않는 힘은 아버지에 대한 일관된 사랑으로부터 나오는듯 했다. 가족 해체의 시대에 아버지에 대한 존경으로 `우보'를 행하고 있는 이 가족이 아주 특별히 돋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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