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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생각한다·5]시인 손 세실리아

경인일보 발행일 2006-12-18 제0면

시 캬

마석가구공단 뒤켠 쪽방촌 어귀엔 무슨무슨

마트라는 한글 상호 하단에 괄호 열고 닫고

siekya라 써넣은 상점이 있다



전자사전은 물론이거니와 네이버 지식iN에도

올라있지 않은 국적 불명의 이 영단어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신산한 삶이 배어있다는데

말하긴 뭣하지만 이 새끼 저 새끼 망할 놈의

새끼… 할 때의 영문표기란다 가게 주인의

상투적인 말투를 야, 이봐, Hi쯤으로 지레짐작해

제 딴엔 멋진 한국식 인사라며 고용주와

가게 주인에게 시캬 시캬하다가 혼쭐났다는

일화는 한 편의 빼어난 블랙코미디다

샬롬의 집에 초대받아 시를 낭송했다

손가락 세 개를 공장 마당에 묻고 방글라데시로

추방당한 씨플루에게 폐암 말기로 고국에 돌아가

히말라야 끝자락에 묻힌 네팔인 람에게 열세 번의

구조 요청을 묵살당한 채 혜화동 길거리에서

얼어죽은 조선족 김원섭 씨에게 사죄하고자

섰다 시인으로서가 아닌 코리안 시캬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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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노트= 지난 가을, 마석성생가구공단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빨리빨리 일해" "꾀병부리지 마" "엄살부리지 마" "저리 꺼져" "X새끼"를 배운다는 속설이 정설로 입증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부끄럽고 숙연했지만 사과하지 않았다. 그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이런 기도를 했다. 오늘 나와 마주한 이들의 상처를 몇 마디 값싼 말로 위로케 마시고, 훗날 시로 빚게 하소서. 할 수만 있거든 이들의 땀과 눈물 닦아줄 무명 손수건 같은 시를 짓게 하소서.

△약력=시인.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사람의문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기차를 놓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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