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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위의 식사 (272)

경인일보 발행일 2007-01-24 제0면

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카인의 아침 ⑫

"네, 관장님."

"손님들 저녁 말이야. 모시고 나가서 하지 그래. 캐피털 가든 호텔 명물 있잖아. 미엔쿠아. 그거 대접해."

다시 박준호 일행을 향해 그가 계속한다.



"미엔쿠아가 뭔지 아나? 게살구이 요리야. 게살을 듬뿍 모아다 메추리알을 으깨어 같이 구워 나오는데……."

"아닙니다, 관장님."

곽칠범 사범이 말을 잇는다.

"사모님이 식사를 준비해 두셨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박준호는 생각한다. 한마디로 어리벙벙하다.

저처럼 하느작거리는 남자의 손에 어떻게 야심만만한 그 프로젝트 열쇠가 쥐어져 있단 말인가.

그래서 한 번 더 김만상의 자태를 살핀다. 여전히 몽롱하다. 눈빛도 흩어지고, 목소리도 찢어지고 있다. 허나 그는 분명 서승돈이 하늘처럼 믿어 의심치 않는, 그래서 흡사 생명줄인 양 단단히 붙잡고 있는 남자다.

"김 관장 만나면 정중하게 대해 줘. 만약, 그 양반이 없었다면 우리 프로젝트도 없었을 테니까. 그는 단순한 무술인이 아니야. 그 사람 하는 일이 상식을 벗어날 때도 있지만, 지나 놓고 보면 그게 선견지명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단 말이야."

딴은 그렇다.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 그러니까 김만상 관장이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월남에 파병되었을 때, 그가 했던 행동은 분명 상식을 벗어난, 일종의 범죄 행위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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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소대장이었던 박상길의 명령을 어기고 생포했던 베트콩에게 먹을 것과 담배를 주었고, 상처 난 곳을 치료했으며, 띄엄띄엄 서투른 베트남말로, 왜 싸워야 하느냐? 왜 죽이고 죽어야 하느냐 따위 부적절한 대화까지 시도했던 터다.

그래도 박상길은 김만상을 꾸짖고,

"이 자는 내일 처형당할 자야. 괜히 인간적으로 감싸고 하지 마. 알았어?"

하나 그게 화근이다. 김만상이 얼마나 퍼마셨는지 한밤중에 베트콩 포로를 풀어줘 버린 것이다. 아무리 취중에 한 일이지만, 상부에서 안다면 그야말로 총살감이다.

박상길은 소대장 입장으로서가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동지 입장에서 더욱 고민한다.

그리고 단안을 내린다. 상부로 보내야 할 보고서를 갈가리 찢어, 이제 막 터 오는 새벽 미명에 날려 버린다. 직무유기다.

그리고 20년이 지난다. 김만상이 20년 만에 베트남을 다시 찾았을 때, 사회주의 공화제 체제에서 상공 에너지 장관 자리에까지 오른 권력자를 우연히 마주쳤는데, 놀랍게도 그가 바로 치열했던 그날 새벽 밧줄을 풀어 주어 구사일생한 장본인이다.

오늘의 베트남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실력자 보치 콩이다.

그 보치 콩과 어깨동무하고 함께 찍은 김만상 사진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관장실 정면에 걸려 있다. 두 사람 다 활짝 웃고 있다. 술이 거나해진 표정이다.

사진은 그뿐 아니다. 상공 에너지 장관 명패가 놓인 집무용 책상에 김만상이 의젓하게 앉고, 그 뒤에 우뚝 선 보치 콩의 모습도 있고, 오늘의 베트남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라고 자부하는 몇몇 장관들과 하노이 시장, 경찰 총수 등과 기념 촬영한 단체 사진도 있다.

물론 보치 콩의 배려 때문이겠지만 사진 속의 김만상은 항상 중심에 서 있거나 앉아 있다. 그가 베트남 권력 핵심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사진들이다.

본국에서는 이름 석 자도 알려지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중소기업 수준의 동방실업이 베트남 통킹 만 석유 탐사권과 국립 전자 종합 대단위 공장 건설 정보를 한꺼번에 쥐게 된 연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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