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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의 권위

송승우 발행일 2007-05-01 제0면

   
 
  ▲ 송승우
(인천지방법원 판사)
 
 
법과대학에 다니던 시절, 존경하는 한 교수님께서 강의시간에 학문 연구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시던 중 "여러분들은 나중에 학자가 되어 어떤 결론에 대하여 그에 합당한 논리적 이유를 찾느라 고생하지 마시고, 판사가 되어 권위로써 재판하십시오"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그 교수님께서는 수년간 판사를 하시다가 강단에 서신 분이었는데 그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잘 이해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교수님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 줄어드는듯 했다.

실제로 재판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학생 시절에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흠잡을데 없이 논리적으로 완벽한 판결이 훌륭한 판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에 민사재판장을 맡은데 이어 올해 형사재판장을 맡으면서 비로소 그 교수님의 말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양형의 문제, 심지어 사실 인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묻는다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이유를 댈 수 있는 판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물론 판사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그 반대의 사실인정, 다른 양형 역시 얼마든지 가능한 것 아닌가?

실제 재판을 해보니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재구성함에 있어 명백한 사실 인정은 거의 없고 수많은 심적 갈등과 번민 끝에 힘겹게 결론을 내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과연 재판을 통해서 내가 밝혀낸 것이 사실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의학이 그 원인과 치료법을 완전히 정복한 질병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환자들이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믿는 것은 나보다는 의사가 조금 더 질병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연구한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판사가 내린 결론에 재판을 받은 사람들이 승복하는 것은 그 기재된 판결문이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 아닌 판사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니 그 결론이 타당한 것이라고 믿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내 사건에 대해서 판사가 공정하고 타당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라는 국민들의 믿음을 얻어야 비로소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권위'에 의한 재판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일주일에 두차례 법정에 들어가면서 나는 국민들의 믿음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재판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법원 밖에서의 언행에 얼마나 신중한지 스스로 물어본다.

답은 항상 미흡하다는 것이지만, 국민들의 믿음을 얻고 진정한 재판의 권위를 찾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에 법복을 입을 때마다 법복을 입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며 마음가짐을 새로이 할 밖에.

/송 승 우(인천지방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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