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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기획]역사를 잊고 사는 도시, 인천

김명래 김명래 기자 발행일 2009-03-02 제0면

용유도 만세운동·학산문화원… 숨겨진 유적… 이야기 담고 친근함 덧칠하라

'인천은 미래만 있고 과거는 없는 도시다'.

인천시청 1층 로비에는 '인천역사관'이 없다. 외국이나 다른 지역에서 와 시청을 견학하는 이들은 아직 착공도 안 된 151층 인천타워의 미니어처를 보고 감탄하지만, 정작 인천의 역사는 알지 못한다. 개항장이었던 부산시를 비롯해 광주시 등이 역사홍보관을 만들어 견학온 이들에게 소개하는 것과 대조된다.

3·1만세운동 90주년을 맞아 지역 안팎의 연구자들은 인천시가 잊혀진 역사를 발굴하고, 스토리텔링 관광이 가능한 유적 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주요 유적 안내판을 시민들이 보기 좋고 이해하기 쉽게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잊혀진 역사가 많다

중구 용유도에서도 1919년 3월28일 주민 150여명이 모여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했다. 당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나이였던 조명원, 조종서, 문무현, 최봉학 등이 혈성단(血成團)을 조직해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이를 기념하는 비석이 용유중학교에 1983년 세워졌지만 관심을 갖는 이들은 많지 않다. 현재 이마저도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용유중학교 관계자는 "3년 전에 용유중학교가 용유초등학교 옆으로 신축해 이사했고, 옛 용유중 교사 부근에 기념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 자리에 도로를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기념비는 어떻게 할 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1865년(고종2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사라진 학산문화원은 터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문학산 학익동 방향 산자락에 있는 텃밭 부근에 '학산서원지'라고 쓰인 표지석이 있지만, 이에 대한 고증이 끝나지 않았다. 인천시는 4년 전 학산서원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헛된 약속에 그쳤다. 이를 두고 남달우(인하역사문화연구소) 박사는 "없어진 유적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 이야기가 있는 유적 답사 코스 개발해야

김지석 안양시청 학예연구사와 양철원 광명시청 학예연구사는 지난 해 독립기념관의 용역을 받아 인천 중구·강화지역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답사하고 보고서를 냈다. 이들은 항일 유적을 직접 방문하고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른'들을 인터뷰했다. 현장에 남아있는 역사의 증언을 종합해 역사 기록을 보완하는 일을 했다. 항일 독립 유적으로 방문한 곳은 ▲중구 자유공원 ▲강화진위대 터 ▲잠두교회 ▲길상면 죽실방죽 ▲길직교회 ▲연무당 터 등 20여 곳이다. 양철원 학예사는 "강화는 오래된 역사는 발굴돼 있으나 근현대사와 항일운동에 대한 조명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며 "항일독립운동지 지도를 만들고 관광객 답사 코스를 개발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 시민 눈높이 맞는 유적 안내판을 만들자

"구한말의 사단(詞壇)을 빛낸 문장가요… 양명학을 가학으로 받들고 고궁(固窮)을 가헌(家憲)으로 지킨…"

이 구절은 강화 이건창 선생 생가에 있는 비석에 새겨진 글의 일부다. 이처럼 유적을 설명하는 비석, 안내판에 새겨진 글은 한문투로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창영초등학교에 있는 3·1만세운동 기념탑에 새겨진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상고문'과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옥고징역 복역자 동문' 명단은 조사와 순우리말 낱말을 뺀 나머지 글자는 모두 한자로 써 있다. 제작자가 관람객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김창수 박사는 "역사가 어떻게 잘 기억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초기비용을 많이 들여 큰 비석을 세우고 높은 탑을 세우는 것보다 친근하고 자상하게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인터뷰/ 이성진 영화여자정보고 교사
"몇십억 들여 기념하기 보다, 생활속 역사교육 틀 조성을"

   
"몇십억원을 들여 기념하는 것보다 적은 돈을 써도 생활 속 역사 교육의 틀을 만들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성진(영화여자정보고등학교 인천역사연구반) 교사는 "길따라 거리에 숨겨진 역사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인천과 같은 개항장인 부산의 경우 근대 역사유적에 작은 안내 푯말을 세워둔 곳이 많다"며 "거리를 걸으면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사람이 살았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했다.

이 교사는 "답사를 나가보면 요즘 학생들은 흥미가 없으면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다"며 "역사 유적을 방문하는 이들을 객체에서 주체로 끌어올리려면 딱딱한 역사 사실을 다양한 시각에서 풀어내는 안내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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