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작두 위에 선무당같이 춤춘 80년(전 2권)┃신용승, 잉걸미디어, 366쪽, 각권 1만2천원.
[경인일보=김선회기자]어느 날 노란색 양복재킷을 입고 꽃무늬가 들어간 빨간 넥타이를 맨 할아버지가 자서전을 냈다며 기자를 찾았다. 그것도 50㏄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서 신문사를 방문했다.
"이 옷 다시는 못 입을 줄 알았는데, 책을 내게 돼서 입어보는거야."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할아버지였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남부지부장을 지낸 신용승(77)씨였다.
그가 내민 두 권의 자서전을 언뜻 훑어보니 역시나 평범한 책이 아니었다.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소설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신씨는 1933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때 담배를 피운다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연극배우의 꿈을 키웠다. 뒤늦은 나이에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2학년 때 또다시 그만 두고 악동들과 어울려 싸움질이나 하는 불량기 가득한 '문제아'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 후 한국전쟁이 터져 인공 치하에서 배우의 꿈이 실현되나 싶었는데, 오래지 않아 형편상 포기하고 말았다. 해군에 두 번 입대를 했으며 탈영했다가 수감된 일도 있다. 탈영병 처지에 가짜 고교 졸업장을 가지고 서울 국립맹아학교에 입학해 교사 자격증을 획득, 훗날 교직에 설 수 있었다. 교직을 그만 두고 수원시 행정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조숙한 반항아'라 불렸어. 국민학교 때는 극장을 자주 다닌다고 담임선생님한테 '극장 대장'이라고 불리기도 했지. 6학년 때는 3일 학교에 오면 4일은 나오지 않는다고 '삼한사온'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어. 청년기에는 무슨 일이든 안 끼는 데가 없는 동네 유지처럼 주먹깨나 쓰며 여기저기 끼어든다고 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유지 건달'로 불렸지."
그의 강직한 성격은 교직에 있을 때나 공무원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잘못됐다 싶으면 앞뒤 안 재고 직언을 하고 바로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군대에서 비인간적 대우와 비리를 참지 못해 탈영까지 했을 때도그랬고, 교직에 있을 때는 승진에 혈안이 돼 있는 주임급 교사들을 보는 눈이 그러했다. 훗날 선거부정을 보는 것 역시, 독재정권과 대학생들의 시위를 볼 때도, 전교조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 자서전을 보면 다들 자기를 포장하려고만 하는데 난 성격이 그러질 못해서 있는 그대로 썼어요. 나이 먹어서 포장하면 뭐할 거야? 잘한 것은 잘한 대로 잘못한 것은 잘못한 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한평생 거칠게 살았지만 그래도 나의 강직한 성격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마워요. 이 책도 내가 초등학교 때 가르쳤던 제자들이 돈 걷어서 낸 거예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