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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법, 행정·기술적 준비부터 선행돼야

유일재 발행일 2011-07-01 제16면

   
▲ 유일재 (호서대학교 교수)
최근 화학물질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환경부가 연내 입법 추진 중인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에 대한 우려가 크다. 화평법은 유럽연합(EU)의 신화학물질 관리제도(REACH)를 본따서 만들어진 환경관련 규제 법규다. 환경부는 국내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의 전과정관리체계를 마련해 국민과 환경의 영향을 사전에 예방하고 국제 화학물질 규제에 대응하여 산업계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화평법 제정을 추진중이지만, 이에 대한 산업계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화평법은 국내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여부를 분석하고 평가하여 그 결과를 정부에 보고 및 등록하도록 강제하는 법규로 환경부는 오는 9월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화학물질 관련 기업은 오는 2014년부터 관련 물질의 유해성 자료를 의무적으로 평가·등록해야 한다. 화평법을 단지 기업의 경제적 부담이라는 이유 때문에 꺼리는 것이 아니다. 환경부가 정한 화평법이 시행되기에 행정적, 기술적 준비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환경부가 단독으로 추진하는 화평법에서는 유해한 화학물질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 소비자에 대한 안전보건 대책이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산업계에 경제적 비용을 부담시키면서까지 추진하려는 화학물질의 전과정 안전관리라는 당초 목적을 달성하려면 선진국에서처럼 화학물질 관리와 관계된 부처가 참여하여 범부처적으로 도입, 시행되어야 한다.

화평법이 시행되면 관련기업은 화학물질의 위해성 여부를 분석하고 등록해야 하는데 현재 국내 분석기관의 수준이 이를 감당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법안 시행 전에 화학물질의 위해성 여부를 전문 분석·평가하는 국내 GLP(Good Laboratory Practice)기관의 확충이 절실히 요구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8개 GLP기관이 있으나 화평법이 요구하는 51개 유해성 평가 항목 중 30여개만 분석이 가능하여 외국 GLP 기관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법 시행시 해외 GLP기관에 시험분석을 의뢰하거나 화학물질 정보를 가지고 있는 해외 기업으로부터 물질자료를 구입해야 하므로 막대한 비용이 화학물질 시험을 위해 해외로 빠져나갈 우려가 있다.

국내 GLP기관의 시험능력을 선진국 수준으로 갖춰야한다. 국내 GLP기관의 확충과 시험 능력을 고려한 화평법 시행 시기 조정이 필요하다. 법 시행 시기 조정이 불가하다면 정부는 EU나 미국 등 화학물질 관련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과 협력해 GLP 등록 정보 공유 등의 노력으로 해외로 빠져나갈 데이터 저작권료 및 시험 비용을 낮추는 등의 현실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법규는 있으되 정작 법규를 시행할 행정적, 기술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화평법이 우리 산업계를 보호하고 국가경쟁력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EU의 경우 신화학 물질 관리제도인 REACH를 입법화하는데 30년이란 기간이 소요됐다. 환경부는 전시효과를 노린 선진국 따라하기식 법 제정이 아니라 산업계 보호 및 발전과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충분한 검토와 준비를 거친 후 시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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