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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내려놓기

김준혁 발행일 2012-06-27 제12면

깨달음 얻으려 명사들 찾아 전국방문
먼곳 아닌 우리네 삶속에 있음을 배워

   
▲ 김준혁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지난 주에 스승님과 대전에 갔다왔다. 대전에 가기 며칠 전에 용주사에 들러 포교국장 스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스님의 방에 걸려있는 위엄있는 부처님 사진을 보았다. 조심스럽게 부처님 사진을 보아도 되냐고 여쭤보니 스님께서 선뜻 액자를 내려주셨다. 참으로 멋진 부처님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는 5대째 이어져오는 가톨릭의 구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절집에 가기가 예사로웠다. 아마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불교사상사를 연구하시는 지도교수님의 영향을 받아서 그랬던 것 같다. 전국의 사찰을 답사하면서 귀하고 멋진 부처님을 많이 만나 보았는데 사진에 있는 부처님은 예사 부처님이 아니었다.

스님께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니 스님은 껄껄 웃으며 아예 액자를 열어 사진을 직접 찍으라고 한수 더 뜨셨다. 필자 역시 환하게 웃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액자를 열어 사진을 꺼내는 순간, 또 다른 사진이 나왔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스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아니! 스님 이 분은 누구세요?"하고 여쭸더니 "이 분이 제 스승님이신 송담스님입니다!"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송담 스님이라면 '남진제 북송담'이라 불리는 그 유명한 분이셨던 것이다. 일찍이 송담 스님의 위명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검은 선글라스를 쓴 모습은 처음이었다. 사연인즉슨 스님께서 젊은 시절에 수행을 하실 때 눈빛이 너무 세서 일반인들이 쳐다볼 수 없어서 일부러 검은 선글라스를 쓰셨다는 것이었다. 완전히 소설속의 이야기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얼핏 전설적인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던 적이 있어 맞장구를 치면서 송담 스님을 어떻게 하면 뵐 수 있을까 하고 조심스레 질문을 드렸다.



사실 필자는 여러 해 동안 선수행을 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알려진 스님이나 아니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사회를 위해 희생하시는 신부님이나 목사님을 만나러 다녔다. 그 이유는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필자의 인생도 그런 분들처럼 세상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보다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을 알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이것은 대의를 위한 길 같지만 사실은 욕심 때문이었다.

포교국장 스님을 통해 대전의 모 사찰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나이는 비록 동갑이지만 한 소식을 얻은 필자의 스승님과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아우와 더불어 일요일에 대전에 내려갔다.

다행히 송담 스님이 계시다는 곳이 대전 시내의 한 사찰이어서 쉽게 찾아갔지만 끝내 뵙지는 못했다. 얼마 전 인천의 다른 사찰로 가셨다는 것이다.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주유천하를 하시는 모양이었다. 아쉽기가 그지 없었다. 스님께서 한 말씀을 하시면 무엇인가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뵙지를 못했으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절집의 산 중턱에 있는 마애불에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오르자니 이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라도 얻고자 하는 욕심이 발동해 30도가 넘는 더위에 산에 오른 것이다. 산의 약수는 가뭄으로 메말랐고, 산 능선에 있는 밭의 작물도 메말라갔다. 인간 세상의 탐욕이 거꾸로 백성들을 아수라 지옥으로 빠뜨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자마자 부처님께 인사하고 곧바로 내려와 막걸리집으로 향했다.

나라의 중심부에 왔으니 막걸리나 한잔 하고 올라가자는 스승님의 제안에 약간 서운해 했다. 무엇인가 큰 것을 얻으려하고 왔는데 끝내 얻지 못한 것 때문에 속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스승님께서 막걸리가 가득 담긴 술잔을 들고 필자의 호를 부르며 한 말씀하셨다. "학산! 우리가 비록 도를 얻지 못해도 좋으니 여기서 시원한 막걸리 한잔 합시다!" 그 순간 도는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잣거리에 있음을 알았다. 욕심을 부린다고 도를 얻는 것이 아니고 저잣거리의 막걸리에 도가 있음을 그 술잔에서 깨달았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그 술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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