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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뿌리를 찾다·4]언론 통폐합(상) - 경기신문 창간 전후

김명래 김명래 기자 발행일 2013-08-13 제1면

군부 칼로 쓴 '자율통합'… 그래도 펜은 시민 향해

   
부정적 여운 남긴 마지막호
경기매일·경기 '역사속으로'
통합 첫지면 '3사 결의' 강조
독자혼란 줄이려 안내 반복


1973년 9월 1일 경기신문 창간을 앞두고 이 신문에 통합된 경인 언론 3사의 표정은 어땠을까. 통합 하루 전날인 8월 31일자 신문을 보면 제각각이었다.

경기매일은 '무반응'이었고 연합신문은 '기대감'을, 경기일보는 '신문의 임무'를 얘기했다.

경기신문 창간을 주도한 연합신문 쪽은 긍정적이었지만, 경기매일과 경기일보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지면을 통해 부정적 여운을 남긴 것이다.



경기매일신문은 통합 소식을 일절 싣지 않았다. 마지막 호를 내면서 기자들이 그동안의 소회를 털어놓거나, 신문사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신문을 냈다.

연합신문은 '4천131호의 종장-연합신문은 이제 가노라-'란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종간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앞날'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는, 감정적인 문구가 다소 포함된 사설이었다.

연합신문은 "과거에 겪었던 모든 체험과 못다한 이상을 오늘의 예지(銳智)로 가다듬어 기어이 소담스런 미래를 잡고야 말 각오에 흠씬 젖는다"고 썼다.

경기일보는 1면에 곽인성 사장 명의의 '폐간 인사'를, 2면에는 '폐간사'를 내보냈다.

경기일보는 폐간사에서 신문의 2가지 임무로 '진실보도', '지도성(의견형성력)'이 있다고 소개했고 이어 '통합을 위한 밑거름이 되겠다'고 적었다.

   
▲ 경기신문 창간호 사진 (축 창간!, 350만 경기도민의 대변지 경기신문, 드디어 출범)이란 문구가 적혀 있고, 아래는 선경 광고.
3개 신문사가 '폐간'한 바로 다음 날 창간한 경기신문의 창간호 사설 제목은 '의식하며 행동하는 신문'이었다.

이 사설에서 경기신문은 "350만 도민의 오각기능(五覺機能)을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종합언론기관으로 탄생했다"며 "(이 영광과 기쁨을 가능케 한 절대요인은)경기 3사 발행인의 초연한 처신과 대의를 위해서라면 소아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결단성이다"고 했다.

'3사 발행인 자율통합'이란 점을 강조한 게 눈에 띈다. 경기신문은 이후 1면 제호 바로 밑에 '본보는 경기매일신문 경기일보 연합신문 3사가 자율적으로 통합한 신문입니다'란 문구를 한동안 계속해서 내보냈다.

갑작스러운 통합으로 인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던 독자들에게 '자율통합'임을 애써 부각한 것이다.

1973년을 전후해 이뤄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11개 지역신문이 사라지고, 경기신문을 비롯한 3개 신문이 창간됐다.

1973년 5월에는 충남일보(현 대전일보)가, 6월에는 전북신문(현 전북일보)이 경기신문과 비슷한 '폐간 뒤 새 신문 창간' 형식으로 생겼다.

1972년에는 대구일보(1953년·이하 창간연도)와 대구경제일보(1951년)가, 1973년에는 호남매일신문(1945년)이 폐간됐다.

군사정권의 언론사 정리작업은 10여 년 전인 5·16 직후에도 있었다. 1961년 실시한 '언론사 정비 정책'에 따라 지방지는 27개가 사라지고, 24개가 남았다.

이때 경기·인천 지역에서는 1951년 8월 1일 창간했던 '경인일보'라는 이름의 신문이 경기매일신문과 통합하면서 문을 닫았다. 당시 경인일보의 종간호는 지령 3천880호였다.

/김명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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