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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건축가 유동룡을 아시나요?

입력 2024-02-14 19:57

1937년생 재일교포로 日 귀화 거부
'이타미 준' 예명 양국 모두 '경계인'
서귀포 수·풍·석미술관 명품 건축
제주에 선생 이름 딴 미술관 탄생
뿌리깊은 고향 생각에 가슴 뭉클


유동룡미술관
제주도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위치한 유동룡미술관. /전진삼 건축평론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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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아들 찬스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나와 집사람 공히 말년 복을 타고났다더니 그 서막의 테이프를 끊은 여행이었다. 지난달 1월 하순, 출발 하루 전까지 제주도에 폭설과 강풍으로 항공기 이착륙 지연사태가 벌어졌는데 다행히도 김포공항을 이륙하여 제주공항에 안착한 그날은 천지가 해맑았다.

이번 집사람과 함께하는 제주투어는 건축가 유동룡(庾東龍) 선생을 답사 주제로 삼았다. 선생이 생전에 건축가의 이름으로 사용한 예명은 이타미 준(ITAMI JUN)이다. 유동룡과 이타미 준. 두 이름 모두 일반인들로선 낯설 터다. 선생은 1937년 재일 교포로 태어났다. 일본에서 자라났으나 끝까지 일본 귀화를 거부했다. 제도상 일본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본식 이름이 필요했다. 그의 성씨인 유(庾)는 일본에선 사용하지 않는 한자라서 본명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 배경하에 이타미 준이란 예명이 탄생한다. 이타미(伊丹)는 선생이 처음 한국 땅을 밟을 때 이용했던 오사카 이타미 국제공항에서 따왔고, 준(潤)은 일본에서 활동하던 절친 작곡가 길옥윤(吉屋潤, 요시아 준, 본명 최치정)의 마지막 글자 '준'에서 따와 만든 이름이다.

선생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많은 작업을 했지만 이타미 준이란 일본이름 탓에 한국의 건축사회와 문화계에서조차 한국인 건축가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일본에선 일본대로 재일 한국인인 그가 온전하게 발을 붙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런 자신의 위상에 대하여 선생은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칭했다. 두 나라 중 어느 한 곳도 그가 뿌리를 내릴 만한 곳이 못 되었던 까닭이다. 그 사이 선생의 건축세계에 대한 평가는 서구사회가 앞장섰다. 선생은 2003년 프랑스 파리의 국립 기메 동양미술관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200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슈발리에 예술문화훈장을 수훈한다. 이후 2006년 국내에서 김수근 문화상, 2010년 일본에서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하며 한국과 일본 건축계로부터 세계적 거장의 위상에 걸맞은 평가를 받았다.



나는 매번 제주도를 방문할 때마다 선생의 건축 동선을 따라다닌다. 그중 서귀포 민간인 주거단지 안에 지은 수·풍·석(水·風·石) 미술관은 사전 예약의 번거로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예약하고 제주도 여행 시 단골로 찾는 곳이다. 제주에 남긴 선생의 유명 건축물이 다수 존재하지만 화려하지 않으면서 소박하게 자연을 건축의 한 요소로 끌어들여 관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명품 건축이다. 2006년의 작업이니 벌써 1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투어 중 각각의 미술관 군데군데 수리해야 할 곳들이 눈에 많이 띄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들 미술관이 지닌 힐링의 마법은 변함이 없었다.

2022년 제주도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유동룡미술관이 개관했다. 선생의 유언 중 하나인, 선생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선생과의 별리 10년만에 탄생한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건축 행보를 이어가는 선생의 딸이 아버지에게 찬스를 선사한 양했다. 마침 개관전으로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이 열리고 있었다. 미술관 카페에서 말아준 말차 한 잔을 비우고 나오는데 불현듯 제주도는 유동룡이 살아서 쌓고, 죽어서 회귀한 뿌리 깊은 고향이며, 선생이 한국이름으로 건축 이야기를 풀어내는 행복의 섬이란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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