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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28] 연애소설 다르게 읽어보기

경인일보 발행일 2016-08-10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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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
트로트와 문학의 공통점은? 사랑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기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과 예술의 8할은 사랑이야기요, 연사(love affair)다.

한국문학의 정전(canon)으로 꼽히는 '춘향전'과 황순원의 '소나기'도 핵심은 사랑이다. '춘향전'의 사랑은 다의적(polysemous)이다.

백성들은 신분을 초월하는 사랑이야기를 통해서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얻었고, 사대부들은 이를 '충효'와 '정절' 같은 유교 이데올로기를 널리 선양하는 국민교재로 생각했다. 반면, 누군가에게 그것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정열적인 사랑과 성적 판타지를 채우는 대리보충(supplement)이었을 것이다.

'소나기'는 어떤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왕성할 청소년들에게 남녀 간의 사랑은 성적 결합에 있지 않고, 오직 맑고 순결한 감정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교육부 당국과 편수관의 심모원려가 국민소설로 만든 작품이다. 국정교과서 소설 알퐁스 도데의 '별'도 이 범주에 드는 단편일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소나기'는 사랑이야말로 여름철의 소나기처럼 인생에서 피해 갈 수 없는 짧고 강렬한 '사건'임을 보여준다. 인생에서 이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사랑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 우리에게 갑자기 찾아와 아픈 기억만을 남기고 속절없이 사라져버리는, 또는 간절히 갈구하나 충족되지 않는 잔인한 축복이다. 저 유명한 할리퀸 로맨스(Harlequin Romance)와 멜로드라마들, 순정만화와 칙릿(chick-lit), 인터넷소설은 현실에서 채우고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에로스에 대한 보상심리가 만든 환상물이다.

할리퀸 시리즈 · 인터넷소설 · 순정만화가 로맨스라면, 칙릿과 멜로드라마는 멜로에 해당한다. 로맨스는 십대와 미혼여성이 우여곡절을 거쳐 결혼에 이르는 것으로 사랑이 완성되며, 멜로는 결혼 이후의 사랑과 갈등을 다룬다.

제니스 래드웨이(Janice Radway)는 연애소설 읽기는 일종의 환상충족으로 경험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보상으로 본다. 즉 연애소설은 감정적 구원을 제공하는 장르로 여성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보호, 어머니 같은 보살핌, 그리고 정열적인 어른의 사랑"이라는 삼중의 만족감을 제공해주는 사회적 장르요 위안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연애소설이 많이 읽힌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여성들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들이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결핍이요, 연애소설의 정체는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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