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인터뷰… 공감]'경기도 최초 여성 1급 공무원' 이화순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

강기정 강기정 기자 발행일 2017-03-15 제9면

"내가 처음 찍은 발자국, 여성 후배들에 디딤돌 되기를"

이화순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1
경기도 최초 여성 1급 공직자가 된 이화순 경기도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이 "여성으로서 공직에 몸담아 다양한 분야에서 30여년 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관계자들과 소통하는 황해경제자유구역청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젊은 女직원이라는 이유로 첫 직장 '감원 1호' 이후 동료 권유로 공직입문 29년 몸담아
주민과 더불어 살던 구청장 시절 가장 기억에 남아… '내가 이래서 공무원이 됐지' 생각
MOU 체결 기업 관계자들과 소그룹 간담회 계획 등 실제 투자로 이어질 수 있게 노력

그의 걸음은 늘 처음이었다. 경기도 최초의 여성 기술감사계장, 성남 수정구청장, 도시주택실장, 기획조정실장, 의왕부시장, 화성부시장, 의회사무처장까지. 그리고 이달 초 경기도 여성 공직자로는 처음으로 1급 공무원이 되면서 또 다시 의미있는 족적을 남기게 됐다.

이화순 경기도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의 얘기다.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직 역시 여성 공직자가 맡는 것은 처음이다.

누구도 밟지 않은 길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딛는 기분은 어떨까. 14일 경기도청에서 만난 이 청장에게 '경기도 최초 여성 1급 공직자'가 된 소감을 묻자 그는 "하하, 뭐 특별히 할 말이 있을까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서 감사하고 정말 좋습니다"라며 웃었다.

2017년 4월 그는 공직에 최초 임용된 지 29년이 된다. 이 청장이 가진 수많은 '최초'의 타이틀 속엔 울고 웃었던 29년의 시간이 묻어있다.



"제가 공직에 입문할 때는 여성이 적었기 때문에 '최초', '처음' 같은 수식어들이 많이 붙었지만 요새 들어오는 후배 공무원들을 보면 '내가 요즘 시험 봤으면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생각을 많이 한다"는 이 청장은 "사회가 여성, 남성에 대한 구분이 많이 엷어지고 누구나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본 토대는 마련된 것 같다. 선배가 이렇게 걸어온 길을 발판 삼아 많은 후배들이 더 크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경기도 최초 여성'

1997년 3월 경인일보는 '부실시공 포도대장 떴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술 분야 여성 1호로 경기도 기술감사계장이 된 당시 이 청장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청장은 "제가 당시 건설교통부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하다 1997년 경기도에 왔다. 당시 기획감사계장을 맡게 됐는데 경인일보에 기사가 났다"며 "'나도 신문에 날 수 있구나' 싶어서 굉장히 신기했었다. 그때가 '경기도 최초 여성' ○○○ (직책) 타이틀로 기사가 나간 게 처음"이라고 회고했다.

국가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여성 공직자가 적었던 시절, 줄곧 이 청장은 '처음'의 길을 걸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로 꼽은 성남 수정구청장 재임 기간도 마찬가지였다.

이 청장은 "공직에 들어와 경기도에서 주로 일을 했지만 정부 부처에서도 기초단체에서도 일을 했다"며 "정부 부처에서는 정책이 결정되고 법이 개정되는 과정을 전반적으로 보고, 경기도에선 도 전체를 볼 수 있는 행정을 경험하는 등 곳곳에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구청장을 맡았을 때"라고 했다.

벌써 15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수정구 주민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이 청장은 "구청 일은 정말 사람들이 먹고 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을 서비스해주는 것"이라며 "쓰레기를 치우고 교통을 정리하는 일 같이 사람들이 울고 웃고, 생활하는 일을 함께 하는 게 구청장의 일이더라.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통장님 이런 분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사람 사는 느낌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래서 공무원이 됐지' 라는 생각을 그 당시 정말 많이 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도시주택실장·기획조정실장, 화성시 부시장, 경기도의회 사무처장으로 재직했던 때도 빼놓지 않고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언급했다.

"여러모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했다. 이 청장은 "도시주택실장을 두번했는데 그 중 2010년은 뉴타운 사업이 완전 뒤집어졌던 때였다. 민간하고 TF팀을 꾸렸었는데 3개월 동안 매일 아침 7시에 김밥 먹으면서 회의를 했었다. 기획조정실장 할 때는 도 살림을 총괄하고 도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니 의미가 있었다"며 "여러군데서 일을 참 다양하게 많이 했는데 화성시에선 '바다 행정'이라는 걸 처음 했다. 화성시는 인구도, 예산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갈등도 곳곳에 많았던, 정말 매력적이고 다이나믹한 도시였다. 도의회에선 128명의 도의원들과 호흡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배울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 '후배 여성 공직자·사회인들 모두 훌륭해… 제가 걸어온 길 발판이 됐으면'

경인일보_1997_0329
이화순 청장이 1997년 3월 기술 분야 여성 1호로 경기도 기술 감사계장이 됐다고 보도한 경인일보 지면. /경인일보 DB
경기도 최초 여성 1급 공직자가 된 이 청장에게 '여성'이란 더욱 남다른 단어일 터. 여성 고위 공직자가 흔치 않은 공무원 조직에서 그는 교육 기간 2년을 제외하고는 공직에 몸담은 29년간 공백 없이 달려왔다.

"이번에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에 지원하려고 이력서를 쓰면서 보니까 교육 다녀온 것 외엔 한 번도 중간에 공백이 없었다는 점을 새삼 알게 됐다"던 이 청장은 "쉼 없이 다양한 곳에서 일해왔는데, 여성이라서 불편할 때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런데 그게 꼭 단점만은 아니었다. 여성은 감성도 더 풍부하고 섬세하고 또 지구력이 있다. 의지만 가지면 여성이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남자를 닮아갈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경험 역시 조직 내에서 직원들과의 관계, 민원인들과의 소통 등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는 게 이 청장의 설명이다. 황해경제자유구역청에서도 이러한 강점을 최대한 살리겠다고 했다.

그는 "기존 황해청과 MOU를 체결한 기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소그룹을 구성해 간담회를 하려고 한다. 20~30명을 한번에 모아 회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서너명 조금씩 모여 요즘 각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 어려운건 없는지 일일이 이야기를 들으면 실제 투자로도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제가 취임식 때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정성을 갖고 함께 일할 수 있게 발로 같이 뛰자'고 말했다. 새로운 자세로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애꿎게도 지금의 이 청장을 있게 한 건 공직에 입문하기 전 몸담았던 기업의 여성 인력 감원 방침이었다. 이 청장은 "남편과 대학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졸업 후 같은 직장에 입사했다. 당시는 젊은 여성 직원들이 '감원 1호'가 됐던 시절이었는데 저도 예외는 아니었다"며 "회사 다니다가 자유의 몸이 되니 잠깐은 홀가분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다들 앞으로 가는데 저만 거꾸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하루하루가 하릴없이 가던 그때, 1년 먼저 회사를 그만둔 직장 동료의 권유로 고시 공부를 하게 된 게 '경기도 최초 여성 1급 공직자' 이 청장을 만들었다.

이 청장은 "요새 공직에서도 그렇고 사회 각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 후배들을 보면 똑똑하고 역량을 갖춘 분들이 많다"며 "저는 여성 공직자들이 많이 없었던 때 출발했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아도 최초,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었지만 그런 발자국 하나하나가 후배 사회인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까지 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 망설임 없이 발자국을 찍어왔다. 앞으로 그의 발자국은 또 어느 낯선 길에 찍히게 될까.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이화순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2

■이화순 청장은?

▲ 1961년(만 55세) 충북 보은 출생
▲ 고려대학교 대학원(건축계획학) 졸업
▲ 1988년 4월 최초 임용(기술고시 23회)
▲ 2003년 성남시 수정구청장
▲ 2004년 의왕시 부시장
▲ 2006년 경기도 건설본부장
▲ 2008·2010년 경기도 도시주택실장
▲ 2012~2014년 국토교통부 기술안전정책관·건축정책관
▲ 2014년 경기도 기획조정실장
▲ 2014~2016년 화성시 부시장
▲ 2016~2017년 경기도의회 사무처장
▲ 2017년 3월 ~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