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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60]'안나 카레니나'와 장르문학

경인일보 발행일 2017-03-22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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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안나 카레니나'(1877)는 문학의 문학이다. 영미권 작가들이 꼽은 세계 최고의 소설일 뿐더러 예술 · 사랑 · 결혼 · 종교 · 윤리 · 계급 · 서술기법 등 소설의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여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완성됐고, 어쩌면 세계소설사는 '안나 카레니나'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이거나 그 영향의 흔적들일지도 모른다. '안나 카레니나'의 문학성은 주제와 시학의 통일 곧 사상과 서술형식의 조화로운 융합에서 올연히 빛난다.

'전쟁과 평화' 혹은 '부활'이 아니라 '안나 카레니나'가 톨스토이의 대표작으로 재조정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톨스토이의 수용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 '애국가' 작사가로 언급되는 윤치호(1865~1945)가 1896년 특명전권공사 민영환을 수행하여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다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영문판을 읽은 것이다. 이에 대한 기록이 '윤치호 일기' 1896년 7월 11일자에 등장한다.



톨스토이를 좌표로 삼아 그를 적극적으로 자기화한 작가는 춘원 이광수(1892~1950)다. 대중적 계몽소설 '흙'(1932)의 주인공 허숭은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레빈의 후계자이며, 또 세간을 등지고 시베리아로 떠나는 '유정'(1933)의 최석 이야기와 작품의 분위기에서 얼핏 톨스토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도 한다.

마츠모토 세이초(1909~1992)의 사회파 추리소설 '북의 시인'(1974)은 러시아문학이 한국근대문학의 저변을 이루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문학청년 시절의 임화(1908~1953)가 톨스토이와 다다이즘에 심취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높은 주장이라 하겠다.

'부활'과 '인생론'같은 텍스트가 한국에 널리 유포된 것은 일본의 문학인들이 톨스토이의 무소유 · 참회 · 허무주의의 사회적 확산을 통해 일제의 군국주의와 전체주의를 견제하려한 문학적 기획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정계의 실세이나 매력 없는 외모에 무미건조한 남편(카레닌)과 결혼한 여성(안나)이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 지내다 자살하는 비극적 이야기다.

또 자기완성을 향해 나가는 레빈의 종교에 대한 성찰은 물론 그의 민중체험을 통해 19세기 러시아가 처한 농민문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루소적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지닌 레빈의 고뇌를 그린 지식인소설이기도 하다. 한 소설 두 이야기인 셈이다.

연애소설은 플로베르(1821~1880)의 '보바리 부인'(1857)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구현하고 도달한 사랑의 탈낭만화와 反낭만적 사랑이야기를 세속화한 장르다. 정비석(1911~1991)의 '자유부인'(1954)은 '안나 카레니나'의 통속화요, 톨스토이 문학의 또 다른 에피고넨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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