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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61]'안나 카레니나'와 결혼

경인일보 발행일 2017-03-29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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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당신의 결혼은 안녕하신지요? 질풍노도의 신혼 시기를 지나 문득 삶을 돌아보게 될 때, 결혼 생활이 채워주지 못하는 가슴 속의 큰 공허가 발견될 때, 혹은 치명적인 사랑이 운명처럼 찾아왔을 때 돌연 결혼은 행복이 아닌 심각한 물음이자 인생의 장애물로 얼굴 표정을 바꾸게 됩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결혼이라는 완강한 제도와 우발적으로 찾아온 뜨거운 욕망 사이에서, 황홀한 사랑과 함께 여기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심리적 불안과 사회적 지탄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카레니나(러시아에서 결혼한 여성은 남편의 성 뒤에 -아', '-아야'를 붙여 이름을 짓는 관행이 있음)의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 소설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러시아 농노제 · 계급해방 · 무신론 · 서술기법 등을 다룬 지식인소설이기도 합니다.

'안나 카레니나'에 영향을 준 두 계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호를 긋고 선로에 뛰어든 어느 귀부인의 자살을 목격한 톨스토이의 개인적인 체험이고, 다른 하나는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입니다. '마담 보바리'는 매력 꽝인 시골 의사와 결혼한 낭만주의자 엠마 보바리가 사랑 없는 따분한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충족을 갈망하다가 두 번의 불륜 끝에 자살을 선택하고 마는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엠마 보바리든 안나 카레니나든 이들은 현실의 논리보다는 감정의 명령에 따라 사랑의 만족을 선택한 이들입니다. 일부일처제 이외의 욕망을 모두 불륜으로 간주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맞서 인간의 열정과 관능적 욕구를 선택했다 침몰한 여성들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나 플로베르는 모종의 교훈적 메시지를 던져주기 위함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의 모순과 욕망의 덧없음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기 위해 이런 작품을 쓴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톨스토이는 최악의 결혼 생활을 한 작가였습니다.

편의상 결혼을 좋은 결혼 · 무난한 결혼 · 나쁜 결혼 · 아주 나쁜 결혼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한데, 최선이 아닌 모두를 위한 차선에 불과한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는 한, 나아가 이를 극복하고 막을 별다른 묘방은 없기에 제2, 제3의 엠마와 안나가 나오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개개인들이 지혜로운 선택을 하고 정신의 체력을 기르며, 대화를 통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는 것이 유일한 대안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안나 카레니나'와 '마담 보바리' 등 결혼을 다룬 고전적 명작들과 함께 잠시나마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브론스키와 안나, 로돌프와 엠마를 적절하게 위무해주는 말랑한 연애소설과 멜로드라마를 읽어 보는 것도 하나의 임시방편이 될 듯합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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