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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82]'인간시장' 정의에 대한 통속적 물음

경인일보 발행일 2017-08-23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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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의협소설은 사회적 불의(不義) 속에서 태어난다. 국가폭력과 일상화한 부정과 부패에 대한 대중들의 환멸과 분노가 무협소설·의적소설 같은 의협소설 읽기의 욕망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저항을 조직화하지 못한 경우, 정의에 대한 갈망은 상상과 공상 같은 즉물적 방식으로 해결되기 십상이다. 저항과 전망을 창안해내지 못한 대중이 생각의 세계 속에서 저항과 정의의 실현을 상상하는 것이다.

정의를 학문적 화두로 삼아 평생을 바친 정치철학자 존 롤즈(1921~2002)는 정의의 일차적 주제를 '권리와 의무를 배분하고 사회협동체로부터 생긴 이익의 분배를 정하는 방식'에서 찾는다.

불의와 차별을 평등의 원리로 해결할 수 있겠으나 인간의 이기심과 성과에 대한 보상을 침해할 수 있기에 그는 민주주의적 평등과 차등의 원칙의 공조를 주장한다. 그리고 차등의 원칙에 따른 피해는 '사회의 최소 수혜자들의 기대치를 향상시키는' 복지제도나 공정한 기회의 균등을 통해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정의는 1981년 제5공화국 시대와 2016년 '최순실 게이트'에서 '촛불혁명'과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김홍신(1947~)의 '인간시장'(1981)은 1980년대 대중들의 정의에 대한 갈망을 자극하고 위무해준 밀리언셀러였다.

'인간시장'은 원래 1981년 '주간한국'에 '스물 두살의 자서전'이란 제목으로 연재된 옴니버스 소설이다. 주인공 장총찬은 스승 무초스님에게 전수받은 뛰어난 무술실력과 표창으로 무장하고 사회 도처에 만연한 비리와 탈법의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어둠의 세력을 응징하고 정의를 실천한다.

그는 초인적인 무술실력을 지닌 정의의 사도이나 애인 다혜 앞에만 서면 순한 양이 되는 순정남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그가 해결하는 문제들은 소매치기·인신매매·퇴폐이발소·사이비교단(하나님 주식회사)·사학비리·엉터리 무당 등처럼 사소하고 지엽말단적인 사건들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각종 불의와 작은 적폐들은 스토리의 전개를 위한 동력이자 폭력의 서사를 창안하기 위한 '인간시장'의 도덕적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존 롤즈의 '정의론'의 정치철학을 자기화한 문재인 대통령의 감동적 취임사는 아직도 우리사회가 '인간시장'이라는 대중소설이 제기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진행형의 과제임을 일깨워준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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