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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79]소설공장 공장장 방인근

경인일보 발행일 2017-08-02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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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방인근(1899~1975)은 소설공장 공장장이었다. 1923년 시 '하늘과 바다'를 시작으로 '마도의 향불'(1932) · '방랑의 가인'(1933) · '국보와 괴적'(1948) 등 무려 90권이 넘는 작품을 출간했다.

문인치고 사업수완도 좋아 1924년 민족주의 계열의 순문예지 '조선문단'을 창간했고, 해방 후에는 영화사 '춘해 프로덕션'의 사장을 맡아 운영하기도 했다.

방인근의 문학 활동은 크게 모리스 르블랑의 '813의 비밀'(1941)을 비롯하여 에밀 가보리오의 '르루주 사건'(1953)과 R. L. 스티븐슨의 '보물섬'(1954) 등의 탐정(모험)소설 번역, '마도의 향불'로 대변되는 애정소설, '국보와 괴적'(1948) · '원한의 복수'(1949) 등의 탐정소설 창작으로 분류된다.

'마도의 향불'은 방인근의 출세작이다. 김애희와 윤영철의 사랑이 서사의 중핵을 이루며, 애희의 계모 숙희의 재산을 노린 방화와 살인, 이달의 애희 겁탈 같은 살인과 치정의 스토리가 얽히고설킨다.



소설은 난관을 이겨낸 애희와 영철 커플의 재결합과 숙희 처벌 그리고 두 커플의 사회사업 투신이라는 대중문학의 장르규칙과 문법을 충실하게 따른다.

통속성 · 치정 · 도덕적 결말 등 통속소설의 삼박자를 모두 갖춘 것이다. 마굴로 묘사되는 식민지 대도시 경성의 악마성과 도시의 일상 그리고 빈민구제 같은 사회사업에 투신하는 남녀 주인공의 이타적 사랑등 같은 통속적 소재를 잘 그려냈다. 마도는 대도시 경성의 악마성을, 향불은 두 남녀의 도덕적 사랑(philia)을 가리킨다.

'국보와 괴적'은 해방 후의 친일파 청산이라는 민족주의적 정서와 테마를 배경으로 한 탐정소설이다. 조선인으로 위장한 하마구치와 그의 사위 피달수가 조선의 국보(신라 금관)을 훔치려다 협력을 거부한 금 세공업자 김선국을 살해한다.

사건 수사를 맡은 탐정 장비호는 민족적 어려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댄스 파티 같은 향락에 탐닉하는 친일파와 미군 및 한인고관 등의 권력층에 분노하며, 국가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민족주의자이며 당대의 민중적 정서의 대변자로 등장한다.

장비호는 사색과 추리를 중시하는 고전파 탐정이 아니라 행동파 탐정으로 애정문제로 고민하는 순정파 영웅이다.

방인근의 탐정소설을 이끌어가는 서사의 동력은 정교한 플롯과 논리가 아니라 '애욕'과 '치정'이다. 추리는 없고, 애욕과 통속이라는 공감 주술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지독한 생활고로 신들린 듯 소설을 썼던 그는 스토리 머신―인간 소설공장이었으며, 한국 문학의 몸집을 풍성하게 불려준 공로자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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