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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그들, 3·1운동을 말하다!·(4)시흥 '연성음사']굳은 기개 詩모임 '만세운동 정신' 잇다

김영래·공지영·박연신 김영래·공지영·박연신 기자 발행일 2018-02-27 제3면

연성음사 시첩 속표지에 기록된 내용
연성음사 시첩 속표지에 기록된 내용(좌)과 군자면 독립운동 유적비(우). /시흥시 제공

시흥 수암리서 2천여명 독립만세
수원·군자면 등 확산 '도화선'돼
일제 탄압 심화속 변절자 늘어나
지역 지식인 모여 '연성음사' 결성
비통한 심정 토해내는 '창구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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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만세운동은 경기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1919년 3월 1일부터 5월 말까지 25개 지역에서 도내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집회 횟수는 303회, 참가인원도 6만8천100명으로 기록됐다. 거칠고 저항적이었던 시위의 양상만큼 일제의 탄압도 잔혹해 사망자가 1천469명, 부상자는 2천677명으로 집계된다.

당시 체포됐던 사람의 수만 4천 220여 명에 이른다 하니, 경기도 민중의 독립의지가 얼마만큼 뜨거웠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경기도의 3·1만세운동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 더 현실이기도 하다. 다행히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도내 기초자치단체에서 지역의 만세운동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에 경인일보는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에 이어 지역의 역사 속에 살아 숨쉬는 3·1운동의 발자취를 기록한다.

수암면 비석거리
수암면 비석거리. /시흥시 제공

■시흥의 '연성음사'

'3월30일 수암리 비립동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니 그 곳에 모이라.'

독립운동을 알리는 격문이 시흥군 수암면 집집마다 은밀하게 돌았다. 마치 격문을 보지 못한 척 마을은 조용했지만, 민중의 마음은 요동쳤다.

30일 오전 10시, 수암리는 시흥 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 모인 2천여 명의 군중으로 가득했다. 당황한 일본 경찰이 해산을 명령했지만 한번 불붙은 독립의 열망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30일에 진행됐던 만세운동은 31일 수원군 반월면에서 이어졌고 4월 4일 군자면 거모리 등으로 퍼져나갔다. 시흥의 만세운동은 '비밀통고'라는 격문을 통해 민중의 독립의지를 촉발했고 지역의 지식인들이 만세 행렬의 선두 역할을 해냈기에 가능했다.

수암리 만세운동에는 윤병소 선생이 태극기를 공수해 만세 행렬의 선두에 섰으며 학교, 경찰주재소, 면사무소 등 일제의 영향력이 큰 장소에서 더 적극적인 만세운동을 펼쳤다.

홍순칠 선생은 국유지 소작인을 대상으로 "조선이 독립하면 국유지는 소작인의 소유지가 되니 만세를 부르는 것이 득책"이라는 격문의 내용을 알리며 소작인을 선동하기도 했다.

또 조선인 일제 순사에게 만세운동을 권한 윤동욱 선생은 수암면사무소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기개를 보였다.

그럼에도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제의 탄압은 치밀하고 간악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변절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두고 볼 수만 없었다. 1920년 음력 5월 16일, 시흥의 지식인들이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연성음사'를 결성했다.

연성음사의 서문에는 비통한 심정과 굳건한 결의가 담겨있다. '갑오년 경쟁 이후 세상의 도리가 변천하고 과거가 모두 없어졌으며, 선비의 기개가 점차 쇠약해지고 세상을 가르치는 교화함이 약해졌으니 어찌 한심하지 아니한가'

특히 비열한 세상 속 빛나는 재능을 숨겨야 했던 선비에게 연성음사는 억울함을 토해내는 창구였다.

'시대의 운수가 고르지 않아 사람의 일이 어그러지니 어찌 지력으로 능히 그것을 구하겠는가?....지역에 사는 세상을 개탄하는 뜻을 지닌 선비들이 글을 숭상하는 풍습을 돕고 다시 일으키고자 시모임을 만들었다'

연성음사는 1920년부터 1929년까지 시흥 뿐 아니라 전국적 규모의 한시대회로까지 발전했고 1929년 '연성음사 제일회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김영래·공지영·박연신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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