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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의 한국재벌사·72]현대-4 현대자동차의 탄생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8-08-28 제14면

국내시장 석권한 신진자동차에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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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미국 포드사로부터 부품을 수입해 1968년 국내 조립한 승용차인 '코티나'의 생산 모습. /현대자동차사 제공

첫 출시 '코티나' 소비자들 호평
독자기술 생산 '포니' 대박 터트려

전차종 사후관리·부품 직접 제작
현대정공, 밸브류·주조품도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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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중공업 진출에도 박차를 가했는데 최대 사건은 완성차사업의 진출이었다.

국내외 건설공사와 주월 한국 군부대의 영내 세탁사업 등을 통해 확보한 거금으로 울산공업단지 내에 10만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1967년에 자본금 5천만원의 현대자동차를 설립한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포드사로부터 부품을 수입해 1968년 국내조립 승용차 '코티나'를 출시했다.

당시 선발기업인 신진자동차가 일본 도요타 자동차와 기술제휴한 '코로나'승용차를 '새나라'란 브랜드로 국내시장을 석권했는데 여기에 현대차가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 그룹 양날개 자리매김

중형세단 '코티나'는 출발부터 소비자들의 호평으로 점차 국내시장을 잠식한 결과 현대자동차는 1972년 자동차산업 '4원화 방침'(현대, 기아, 신진, 아세아자동차로 완성차업체 4원화)이 확정될 때까지 급속하게 성장해서 현대건설과 함께 그룹의 양 날개로 자리매김했다.

이 무렵 현대자동차는 또 하나의 대박을 터뜨렸는데 그것은 1974년 현대가 독자기술로 생산한 '포니'승용차였다.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로 미쓰비시의 1천238㏄ 직렬 4기통 엔진에다 후륜구동형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2번째로, 세계에서 16번째로 고유모델 자동차를 만든 국가가 됐다. 판매를 개시한 1976년에만 1만726대가 판매돼 포니의 시장점유율은 43.6%를 기록했다.

포니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자 한국이 장차 자동차 강국으로 도약하는 전조였다.

현대차의 양산이 본격화하면서 1974년 2월 26일에는 포니를 비롯한 전 차종의 사후관리를 위해 자본금 2천500만원의 현대자동차서비스를 설립했다.

급증하는 자동차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종합부품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1977년 6월 25일에 자본금 2천500만원의 고려정공을 설립했다.

현대자동차서비스로부터 휠, 범퍼 생산시설과 1개 컨테이너 생산라인을 인수해 출발한 고려정공은 그해 7월 1일 자본금을 5천만원으로 증자하고 현대정공으로 변경했다.

>> 현대차서비스 설립


현대정공은 자동차부품의 제조 판매, 운반기기 및 구조물과 부품제조판매, 주물 제조 판매 뿐만 아니라 밸브류와 주조품 양산에 돌입했다.

또한 197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수출경기 호조로 컨테이너수요가 격증하자 현대자동차서비스로부터 인수받은 울산 제1공장에 육상용 및 조선용 밸브를 생산하는 밸브플랜트와 컨테이너 생산시설을 설치했다.

현대정공은 월 1천대의 컨테이너와 150t의 밸브 등 주조폼 생산을 본격화했다.

이후 다양한 컨테이너와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등 사업규모 확대에 주력하는 한편 1980년에는 현대자동차로부터 특장차량의 특장부문작업을 이관받아 보랭차, 탱크로리, 더블캡 등의 생산도 겸했다.

1981년 4월에는 울산선재와 남목철재를, 1982년 7월에는 경일 요트산업을 각각 흡수했다. 현대의 자동차사업은 완성차공장에서 출발해 AS 및 자동차부품 제조 등으로 다변화함으로써 현대차의 경쟁력을 점차 제고해 나갔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1978년 현대차량을 설립했다. 국내 중차량공업은 1960년대에 기차 바퀴와 대차(臺車)를 생산하기 시작해 1970년대에는 객·화차를 제작하는 정도였다.

현대중공업은 국방용 특수차량인 중기제품과 철도차량 제조사업을 추진하면서 전담 사업부서를 설치하고 1976년 3월에 방위사업체로 지정받았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기관차 제작기술이 없어 1977년 5월 스웨덴 ASEA와 전기기관차에 대해 GE사와는 디젤기관차에 대해 각각 기술제휴하고 1977년 12월말 228억원을 투입, 창원기계공단 내에 대지 15만 평을 확보해서 건평 2만5천평의 기관차공장을 준공하고 1978년 10월에 자본금 5억원의 현대차량을 설립한 것이다.

1979년 1월부터 기관차제작에 착수해 출력 3천300마력, 최고설계속도 155㎞/h의 GT-26CW형 기관차인 국산 1호기를 생산한 이후 특수 중기의 생산판매, 디젤기관차, 전기기관차, 전동차, 객화차, 일반기계 제조업으로 사업영역을 점차 확대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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