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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타동사 연습① /전태호

경인일보 발행일 2019-01-02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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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타동사는 발산의 성질 띠고 있어서 소리가 크다 따라서 반드시 무언가를 괴롭힌다
엄마·아빠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목적어 취급… 어깨는 티 안나게 움츠러들었다
제 방에 틀어박힌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동생도 평생 목적어에만 머물러


소리가 크면 반드시 무언가를 괴롭힌다. 타동사는 발산의 성질을 띠고 있어서 소리가 크다. 따라서 타동사는 반드시 무언가를 그러니까 목적어를 괴롭힌다.



화요일



타동사가 기능하려면 주어가 필요하다. 아빠는 아침부터 꽝 소리가 울리도록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신발을 벗자마자 집이 떠나가라 큰기침을 해댔고, 식탁이 쨍쨍대거나 말거나 유리컵을 함부로 내려놓았다. 내 방 바로 앞에선 신문지를 짜증스럽게 넘겼다.

 

나의 잠은 이미 타동사에 의해 깨어지고 머리맡의 유리창과 블라인드는 가늘게 흔들거렸다. 주황색 귀마개는 밤사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타동사는 나를 이불 속으로 숨어들게 만들었다. 침대에 걸터앉았다가 도로 눕게도, 냉랭한 방바닥에 납작 엎드리게도, 나중에는 그저 가만있게도 만들었다.



아빠가 잠을 청하기 전까진 내 방에 있으면서도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아빠는 오전 교양 프로그램을 틀고 볼륨을 어지간히도 키워 놓았다. 

 

채널을 돌리면서 정치인을 헐뜯기도 하고 약 떨어진 리모컨을 손봐주고 나서는 거실 바닥을 발뒤꿈치로 쿵쿵 굴렀다. 배까지 움켜잡고 웃어 댈 즈음 엄마도 참다못했는지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이어 나를 대신해서 빨리 좀 자라고 잔소리를 퍼부었고, 위아래 작업복을 벗긴 뒤 아빠를 안방으로 밀어 넣었다. 

 

엄마 역시 스스로 주어라는 걸 알고 주어들처럼 행동했다. 나를 생각해서 나름 믹서나 그릇을 조심히 다루는 듯했지만 내 귀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거슬렸다. 가스레인지 경고음을 무시하고 불을 켤 때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머리칼까지 곤두섰다. 

 

부엌 쪽에서 소리가 잦아들고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쯤 엄마는 내게 식사하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제 밖이 위험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가 작으면 아무것도 괴롭히지 않는다. 자동사는 수렴의 성질을 띠고 있어서 소리가 작다. 따라서 자동사는 아무것도 괴롭히지 않는다. 자동사도 기능하기 위해선 주어가 필요하다. 나는 살짝 목감기에 걸렸는지 말이 제대로 안 나오고 그마저도 목소리가 갈라졌다.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 창문 아래에 섰더니 부엌에서 국을 뒤적이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부엌 바로 옆으로 보이는 동생 방은 오늘도 굳게 닫혀 있었다. 아빠는 안방에서 코를 골았는데, 한 번씩 숨을 몰아쉬거나 컥컥 숨을 뱉을 때마다 내 귀는 쫑긋 섰다. 돌아서지는 못하고 고작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는 순간, 테이블 아래에 있던 페인트 붓과 롤러가 발에, 그러니까 털슬리퍼에 밟혔다. 엄마는 배고플 텐데 어서 밥부터 먹으라며 나를 부엌으로 불러들였다. 나는 순순히 식탁 의자에 앉았다. 

 

된장찌개엔 지나칠 정도로 건더기가 담뿍 들어 있었다. 숟갈에 뭐라도 걸릴라치면 나를 위해 따로 빼놓은 것 같아서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 엄마는 어질러진 페인트 도구까지 대신 정리해 주었다. 불러들인다든가 위한다든가 정리한다든가 하는 세 가지 행위 모두 타동사였다. 

 

타동사는 아무리 의도가 선하다 한들 반드시 목적어를 괴롭힌다. 내 입술은 일자로 굳게 다물리고, 어깨는 티 안 나게 움츠러들었다. 엉덩이는 밥상머리에 붙박였다. 큰소리를 내지 않으면 비록 주어로 태어났을지언정 끝내 누군가의 목적어가 되고 만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를 목적어 취급했다.

내 꼴은 회사에 속해 있는 동안 이렇게 되고 말았다. 처세술이랄까, 동기들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타동사를 구사하니, 사회생활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금방 주어 자리를 하나씩 꿰찼다. 나는 딱히 밉보인 것도 아닌데 목소리 큰 주어들 틈에서 점점 작아지다 결국 목적어 자리로 밀려났다. 

 

그래도 퇴사 직후에는 일부러 더 주어처럼 굴었다. 집안에서 입지가 흔들린다 싶을수록 목소리를 높였고, 고민 끝에 프리랜서 번역가가 되겠다고 밝혔더니, 어느 순간 엄마와 아빠의 입은 목적어처럼 떡 벌어졌다. 굳이 두 사람의 입을 틀어막기도 전에 나는 일본 식자재 쇼핑몰을 운영 중인 지인으로부터 일감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타동사로 큰소리치는 게 어려워졌다. 

 

무역 거래 조건까지 공부해 가며 일에 파묻혀 지냈건만, 건당 수입은 기껏해야 커피 값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지인의 사업 악화로 나도 덩달아 빈둥빈둥 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어서 좋은 색싯감을 찾아야 할 텐데…… 라고 아빠가 한마디 던졌다. 

 

술김에 건성으로 한 소리란 걸 알면서도 지금 누굴 놀리나 싶었다. 타동사 중에서도 놀린다는 표현은 유독 날을 세우고 있었다. 똑같이 타동사로 받아치고 싶었지만, 짧은 사이 몇 가지 생각이 스치면서 내 말문은 콱 막혀 버렸다. 

 

아빠는 비록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하기는 하지만, 안정적인 직장에서 꼬박꼬박 돈을 벌어왔다. 벌어오는 것은 틀림없는 타동사이다. 따라서 타동사는 큰소리를 낼 수 있다. 

 

반면 불안정한 프리랜서 생활만으로는 돈을 거의 못 벌었다. 문득 세상만사가 거대한 문법에 의해 돌아가는 듯했고, 그날 이후로 내 입에선 큰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옥상에 방수 페인트를 칠하려고 준비를 서둘렀다. 아빠는 여전히 세상 모르고 벽을 뚫을 기세로 코만 골았다. 물론 세탁기가 탈수를 돌릴 때는 아빠가 깨는 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졸아들었다. 나는 엄마가 현관을 나서자마자 허겁지겁 욕실로 들어갔다. 

 

변기 물을 내리고 몸을 씻는 동안엔 큰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내리거나 씻는 건 의심의 여지 없이 타동사이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잠을 자거나 집을 비울 때에만 타동사를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조용한 시간을 틈타 번역을 해야만 했다. 

 

최근에는 그래도 번역 중개 사이트 서너 군데에 유료로 멤버십 가입을 하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등록해 두었더니 조금씩 의뢰를 받기 시작했다. 꾸준히 번역을 하고 돈을 벌면 눈치 안 보고 큰소리를 낼 수 있다. 버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타동사이다. 

 

아빠 몰래 타동사를 통장에 쌓아 두고 벼르다 보면 기회를 잡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노트북을 켠 뒤 의뢰인 메일을 열었다. 모니터 한쪽에는 인터넷 사전을 띄워 놓고 전문 용어로 된 내용을 찬찬히 살폈다.

삿포로 다시 이리 미소의 분석치에 관해서.

표준치 색(Y%)은 27.5%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가공 시 작업자가 수치를 높이면 색(Y%)은 하얗게 변합니다. 반대로 낮추면 색(Y%)은 검게 변합니다. 파랗게 변색된 부분은 효모에 의한 발효 과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2월 출하분의 색(Y%)은 26.2%로 기준치에 적정하다고 판단됩니다.



번역을 해 놓고도 무슨 의미인지 도통 읽어낼 수 없었다. 몇 번을 다시 읽어 내려가며 내 방식대로 정리하고 이해해 보려 했다. 우선, 작업자는 수치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색(Y%)의 수치는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작업자는 규정되어 있는 색(Y%)의 수치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게 된 것일까. 규정된 것을 높이거나 낮출 수는 있다. 그렇지만, 높이는 것을 규정될 수는 없다. 낮추는 것도 규정될 수 없다. 반면, 높이는 것을 규정할 수는 있다. 낮추는 것도 규정할 수 있다.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아까와는 다른 심장 소리를 오래도록 들었다. 

 

색(Y%)은 왜 스스로 규정하지 않고 규정되기만 할까. 어째서 제 뜻과 상관없이 높아지고 낮아지는데 잠자코 있기만 할까. 타동사 때문이라고 납득은 하면서도 뭐랄까, 갑갑한 느낌을 견디다 못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머지 부분을 번역하고 있을 때 하품 소리를 듣고 말았다. 엄마가 현관문을 여는 바람에 그만 아빠가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켰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가 되어 있었다. 나의 온 신경이 자꾸만 바깥으로 쏠렸다. 아직 일이 남았는데 집중력도 흐트러졌다. 나는 다시금 자동사의 영역으로 내쫓겼다. 늘 그렇듯이 타동사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빠가 전화기에 대고 귀청이 따갑도록 목청을 높였다. 그기 아이라 카이, 현장에 반장님 없능교? 그라믄 내가 내일 확인해 볼게예, 그라게심더. 통화를 마친 뒤에는 본인의 타동사를 과시하고 싶은지 엄마를 찾았다. 여보야 여서 일하는 젊은 아들 어뜬 줄 아나, 아침에 내 가면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는 기라, 반장도 내 없으믄 일이 안 된다 카더라. 억센 사투리로 된 아빠의 말은 절반도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매사에 둔감하고 무딘 점이 주어들의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빠는 대수롭잖은 일로 작업반 동료들을 들이받고, 집에 돌아와선 그걸 또 자랑삼아 떠벌리고,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 데다 나이를 먹을수록 남의 말도 거의 안 들었다. 저러다 꼭 말을 함부로 하니까 오래 못 붙어 있는 거라고, 엄마도 가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주어는 타동사로 목적어를 괴롭힌다. 그러나 아주 가끔 형세가 뒤집힌다. 타동사를 많이 가진 쪽은 무조건 주어 자리를 차지한다. 타동사를 적게 가진 쪽은 끝내 다 잃고 목적어 자리로 내몰린다. 일자리를 전전한다는 건 아빠의 타동사도 의외로 별 볼 일 없다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자꾸만 입가가 실룩거리고 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해가 저물고 화장실이 급해서 안달하던 차에 엄마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코 골고 취침함. 내일 근무임. 엄마도 곧 취침. 가스레인지 위에 알탕 있음. 나는 우선 화장실을 다녀온 뒤 창가 블라인드를 끝까지 걷어 올렸다. 

 

망설이다 노트북 단자에서 이어폰을 빼고 고막이 찢어지도록 볼륨을 높였다. 금속성 록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기도, 몸부림치듯 온몸으로 리듬을 타기도 했다. 나중엔 기지개를 쭉 켜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내일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정리해 봤다.

수요일



현관 타일 바닥에다 딱딱 발뒤축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큰기침도 한바탕 터지는가 싶더니 현관문이 안전하게 닫혔다. 발소리 때문에 계단이 울렸지만 곧 잦아들었다. 시동이 켜지면서 밤새 얼어 있었을 경유차 엔진이 탈탈거렸다. 마모된 브레이크 라이닝 소음도 차츰 멀어졌다.

나는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방문을 활짝 열었다. 티브이를 켜고 낄낄 웃음을 터뜨리다 가죽 소파를 쓰다듬으며 햇빛 속에서의 자맥질을 즐겼다. 그러다 문득 아주 작은 인기척을 느끼곤 주의 깊게 우리 집 전체를 둘러봤다.



3층에는 내 방이 있고,

         중앙으로 거실과, 여러 살림살이와, 부엌이 있고,

         현관부터, 안방과, 화장실과, 여동생 방이 붙어 있다.

2층에는 월세로 내놓은 빈 방과, 50대 남성 세입자가 있다.

1층에는 40대 남성 세입자와, 60대 남성 세입자가 있다.



아무래도 동생이 지금 제 방에 틀어박혀 있는 듯했다. 그릇과 접시를 꺼내려고 찬장을 여는 순간, 급히 침묵이 만들어지는 걸 보고 알아차렸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라 아빠가 있는 날에도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밤늦게 내가 전기밥솥을 열고 밥 한술을 떠먹거나, 흔적을 지우려고 잽싸게 설거지를 할 때, 화장실 변기에 앉아 힘을 줄 때면 동생 방은 수상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내가 알기로 동생은 평생 목적어 자리에만 머물러 있었다.

한때 나는 월급을 받으면 어깨를 으쓱하며 동생에게 용돈을 줬다. 그러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는 잘 하고 있는지, 노량진에 보내 준다는데 왜 싫다고만 하는지 등을 빼놓지 않고 물었다. 아무리 물어도 자동사밖에 돌아오지 않으니까 나는 종종 동생 방 앞에서 귀를 대고 엿들었다. 

 

잘못 들었길 바랐지만 동생은 의지박약 탓인지 책상 앞에는 붙어 있지 않고 늘 빈둥거리기만 했다. 바닥에 늘어지거나 쿠션 또는 인형에 파묻혀 있었고, 내가 퇴근해서 돌아올 시간이면 게임이나 유튜브에 빠져 지냈다. 결국 공부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거라고 꾸짖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회사 내에서 목적어 자리로 밀려났다. 

 

요새도 아빠가 없는 날이면 엿듣기 위해 동생 방 앞으로 갔다. 하지만 이제는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그냥 못 들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동생이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생은 돈을 못 버니까 큰소리를 못 냈다. 나 또한 용돈을 못 주니까 큰소리를 못 냈다. 주는 것은 타동사이다. 나로서는 역시 번역 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뜨거운 물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시간을 들여 면도를 한 다음엔 온몸에 로션을 살뜰히 발랐다. 흰색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고 칼라를 빳빳하게 세우며 아까부터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 엄마가 현관문을 열더니 백시멘트 포대를 안으로 끌어당겼다. 이어서 백색 가루를 한 바가지 덜어 놋쇠대야에 넣고 물을 부어 개기 시작했다.

"2층에 내려가 보니까 천장에 금이 갔나 봐. 곰팡이가 시퍼런 게 아주 엉망이더라. 엄마는 가서 시멘트 좀 바르고 올게. 시끄럽겠지만, 대못을 쳐서 천장을 좀 부술지도 몰라."

나는 손 소독제를 손에 받아 비비면서 넌지시 물었다.

"도와줘?"

"아아냐, 네가 무슨."

엄마는 어렵사리 꺼낸 나의 타동사를 단숨에 두 동강 내버렸다. 타동사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고 흩어졌다. 손쉬운 소일거리조차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현관 앞의 운동화와 슬리퍼도, 거실 건조대 위의 빨래도, 욕실 수납장 속 수건과 속옷도, 변기 옆 두루마리 화장지도, 음지 또는 양지에 있는 화분도 이미 엄마에 의해 질서가 잡혀 있었다. 

 

엄마는 밖에서 발디딤용 나무 의자랑 흙손이랑 쇠망치 등을 챙겨 왔다. 방이 오랫동안 놀아서 그저께는 손수 찌든 때도 벗겨냈다. 하루하루 그렇게 2층에 세입자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층간소음 문제가 걱정되었다. 그럼에도 세입자는 내게도 도움이 되었다. 

 

월세를 받으면 엄마는 큰소리를 낼 수 있다. 게다가 엄마는 법적으로 우리 집을 가지고 있다. 받는 것도, 가지는 것도 타동사이다. 아빠는 돈을 벌어오기만 할 뿐, 집을 가지지는 못했다. 두 개의 타동사는 한 개의 타동사보다 큰소리를 낼 수 있다. 머지않아 나의 타동사까지 보태면 도합 세 개가 된다.

엄마는 가급적 혼자 사는 남자를 세입자로 들였다. 한집에 둘 이상을 들일 경우 내 신경이 곤두선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부부싸움이라도 벌이면 내 머릿속에는 집집마다 주어 자리를 놓고 다투는 광경이 그려졌다.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엄마와 아빠도 처음에는 집주인과 세입자로 만났다. 

 

당시 나는 유치원생이나 겨우 됐을까, 물론 이따위 문법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았다. 전세 계약이 끝나고 아빠를 내가 사는 3층에 들인 결정에 대해선 어찌되었든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가뜩이나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됐을 텐데, 어린 목적어 둘을 건사하겠다고 애쓰던 장면 장면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사실혼 관계를 고집했다. 아빠와의 사이에서 새로운 목적어를 낳지도 않았다. 그렇게 자기만의 원칙에 따라 타동사를 지키고 있었다.

엄마는 내려갈 채비를 거의 끝내고 내 쪽을 힐끔 보더니 미소와 울음을 동시에 머금은 채 말했다.

"마주쳐도 그냥…… 그냥, 무시해버려."

"어어, 알았어."

귀가 번쩍 뜨여서 잠시 머뭇거렸다. 당장 내 방으로 아니면 화장실로 내빼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런 대화가 동생 방에서도 들릴 것 같았다. 내가 목적어라는 사실을 엄마도 알고 아빠도 분명 알 테고 이제는 동생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엄마는 입을 삐죽이며 작정한 듯 말을 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뭐."

"알았어, 알았어."

"요즘은 엄마도 할 말 다 해."

"응, 알았으니까…… 알았어."

내 가슴 한쪽이 우그러들었지만 일부러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차근차근 타동사를 모으는 중이라고,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중이라고, 제발 부탁이니 알아서 해결하게 좀 내버려 두라고, 말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냥 그러지 않았다. 타동사를 하나도 갖고 있지 않으니까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엄마는 타동사를 하나 갖고 있으니까 끈질기게 덧붙일 수 있었다.

"여긴 아빠 집도 아닌데, 뭐."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래."

가만히 서 있는데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엄마에게서 놓여나자마자 내 방으로 돌아와 차가운 방바닥에 퍼더앉았다. 잠시 뒤 현관문이 열리고 엄마가 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한 번 현관문이 열리고 이번엔 동생이 우당탕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도저히 계단을 내려갈 수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면 사회생활 당시처럼 주어들과 부딪치고 만다. 내려가는 건 마찬가지로 타동사이다. 타동사는 발산의 성질을 띠고 있어서 또 다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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