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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자주적 철로 사업 추진… 한국의 '철도역사' 앞당겨졌다

김민재 김민재 기자 발행일 2019-02-14 제1면

이상재 선생 후손 기증 외교문서

한국철도 도원역
도원역 인근 '철도 최초 기공지' 기념비-13일 오후 경인전철 도원역 인근에 설치된 '한국 철도 최초 기공지'기념비를 배경으로 경인선 전철이 달리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경인선 개통 11년전 대미협상 담겨
美제시 계약서 '철도약장' 초안 발견
외세 의한 강제 부설 주장 뒤집어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 개통 11년 전인 1888년 조선이 자주적 철도 부설을 위해 미국과 협상을 벌인 사실이 문서를 통해 최초로 확인됐다.

한국 철도 도입 과정의 역사가 앞당겨졌음은 물론 조선이 자주 근대화를 위해 철도 사업을 적극 추진했다는 사실도 입증됐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1850~1927) 선생의 후손이 기증한 유품에서 이 같은 내용의 문서가 발견됐다고 13일 밝혔다.

이상재 선생은 1888년 1월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 D.C.에 주미공사관을 개설하고 그해 11월 귀국했다. 이 문서는 이때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 자료는 문헌자료 5점과 사진자료 3점인데, 이 가운데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에는 그간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경인철도 부설 관련 미국과의 협상 내용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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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최근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의 후손이 보유한 유품에서 경인선 개통 11년 전인 1888년 조선이 자주적 철도 부설을 위해 미국과 협상을 벌인 사실이 담긴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이 발견됐다고 이날 밝혔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미국 뉴욕의 법관 '딸능돈'(달링톤의 당시 번역어로 추정)과 미국 사업가들은 1888년 10월 회사를 설립해 경성과 제물포 사이에 철로를 설치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만약 조선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바로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계약서인 '철도약장'(鐵道約章)을 작성해 주미공사 측에 전달했다.

이번에 발견된 문서는 철도약장의 초안인 '미국인약초(美國人艸初)'다. 철도약장은 주미공사 박정양의 미국 기행기인 '미행일기(美行日記)'에 등장하지만,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아 언제, 어떤 내용으로 작성됐는지는 알지 못했으나 미국인약초로 그 내용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됐다.

고종은 당시 미국의 철도 부설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미국 측이 내건 세금 면제 조항 등 조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박정양이 만류해 실제 성사되지 않았다.

이 문서의 발견은 우리나라 철도 역사를 10여 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고종이 미국 현지에서 직접 철도 부설 협상을 추진했다는 점은 외세에 의해 강제로 철도가 놓였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추가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는 조선으로부터 철도 부설권을 허가받은 미국인 사업가 J.R. 모스가 1897년 3월 22일 인천 우각리(현 경인전철 도원역 부근)에서 경인선 기공식을 가진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코레일도 철도 연혁을 1897년으로 시작하고 있다. 모스는 이후 일본에 철도 부설권을 넘겼고 1899년 9월 18일 제물포~노량진 구간이 개통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888년 조선은 철도부설 사항을 주미공사관을 통해 미국 측과 논의하고 있었으며 관련 계약서의 조문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며 "미국인 사업가 모스 이전에는 철도 관련 기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존재를 확인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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