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대게' 좋네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
겨울바다를 생각할 때면 늘 고독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고독을 씹고, 여유를 만끽하고, 바다 앞에서 인생을 곱씹는다는 자아성찰의 시간은 자율에 맡긴다.
마침 대게를 와작와작 씹을 카니발의 시간이 째깍째깍 다가온다. 겨울의 끝자락에 동해안 7번 국도의 중심, 울진이다.
관광객들이 바다 위 20m 높이에 세운 인공 산책로인 울진 등기산 스카이워크에서 동해의 시원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봄마중을 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울진군 제공 |
지난해 울진대게축제에 참가한 외국인 관광객이 대게를 들어보이며 즐거워하고 있다. 매일신문/이채근기자, 울진군 제공 |
울진대게의 성지인 공판장이 있고 여객선 터미널이 있고 후포 등대가 있는 등기산공원, 그리고 스카이워크가 있다.
백년손님 벽화마을도 끼워넣을 수 있다. 힐링코스로 단연 으뜸은 등기산공원이다. 후포항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동해 바다 망망대해를 조망할 수 있는 시각이 나온다.
세계 유명 등대 5개가 미니어처로 서 있다. 후포 등대는 진짜다. 가볍게 산책하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
등기산공원을 걷다 왕돌초(王乭礁)라는 이름을 접한다. 이곳에선 꽤 알려진 지명이다. 동해는 불과 100m만 나가도 심해인데 울진 후포에서 23㎞ 떨어진 곳에 수심 3~25m의 해저 벌판이 있다니. 고교시절 한국지리 좀 했다는 이들도 처음 듣는다며 당황하는 지명이다.
수중 금강산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울진군은 이곳을 '동해의 심장'이라고 홍보한다. 3개의 거대한 수중 봉우리를 갖고 남북으로 긴 형상을 하고 있다.
남북 54㎞, 동서 21㎞로 여의도 면적의 10배다. 울진은 대게를 홍보할 때 왕돌초에서 잡은 걸 강조한다. 해류가 빨라지는 곳에서 자란 대게인 만큼 여느 대게보다 굵기도 굵고 실하다는 논리다. 이곳도 전설의 섬 이어도처럼 동해 어민들 사이에 구전돼 왔다고 한다.
바다낚시꾼들과 스카이다이버 사이에선 제법 알려진 곳이다. 구글링에 왕돌초가 적잖이 걸린다. 대게를 찌거나 회를 떠 파는 식당들이 왕돌초 홍보의 첨병으로 선 셈이다.
울진 매화마을 담벽에는 만화가 이현세의 작품들이 마을을 휘감고 있다. /이채근기자, 울진군 제공 |
영덕에서 울진으로 넘어오는 7번 국도에 이들의 사진이 크게 입간판으로 붙어있다.
2015년 SBS 예능프로그램 '백년손님'에 출연했던 피부과 전문의 남재현 씨 처가댁이 울진 후포다. 남재현 씨도 본인 이름보다 '남서방'으로 더 알려졌다. 남서방네 처갓집은 벽화마을로 바뀌어 관광코스가 됐다.
등기산공원에선 42m 길이 출렁다리가 스카이워크로 연결해 준다. 출렁다리를 무서워하는 성인들이 간혹 있는데 계단으로 스카이워크에 오르는 길이 따로 있다.
강원도 양양 남애항 외에 동해안의 스카이워크는 이곳뿐이다. 바다 위 20m 높이에 세운 인공 산책로다.
바다 쪽으로 난 57m 구간은 바닥이 투명한 유리로 돼 있다. 투명 유리 아래로 바다가 보인다. 유리 아래 한 프레임으로 갓바위도 갇혀 들어온다.
울진 등기산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갓바위. /이채근기자, 울진군 제공 |
울진 후포항과 영덕 축산항은 20km가 채 안 되는 직선거리다.
대게를 쪄서 파는 곳에 따라 울진대게와 영덕대게로 구분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다.
사실 동해안 대게의 최대 집산지는 포항 구룡포항이다.
요즘 말로 영덕과 울진의 '뼈를 때리는' 팩트다. 그러나 아웅다웅 하는 이들의 다툼은 결과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
2월 말에 울진이, 3월 말에 영덕이 대게 축제를 열어 관광객을 그러모은다. 울진대게축제는 28일부터 3월 3일까지, 영덕대게축제는 3월 21일부터 24일까지다.
울진대게축제는 후포항 왕돌초광장 일대를 무대로 삼는다. '월송 큰 줄 당기기' 등 전통 민속놀이와 대게춤 플래시몹, 대게춤 경연대회, 거일리 대게원조마을 풍어 해원굿 등 공연이 준비돼 있다. 대게 경매를 비롯해 할인 행사, 대게길 걷기 등 이벤트도 열린다.
후포항 아구지리탕과 죽변항의 물곰탕. /이채근기자, 울진군 제공 |
울진 대표 어항 두 곳에는 해장에 유익한 종목이 하나씩 명성을 떨친다. 죽변항의 물곰탕과 후포항의 아구지리탕이다. 공교롭게도 못 생기기로 수위를 다투는 두 어종이다.
죽변항 물곰탕은 꼼치라는 어종으로 끓여낸다. 성인이 두 팔로 번쩍 들어야할 만큼 크다. 박하게 못 생겨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생김새다.
순두부처럼 흐물흐물하게 입에서 녹는 반전 식감에 더 잊을 수 없다. 묵은 김치와 무를 썰어넣고 끓여낸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해점어'라 이름붙였는데 꼼치인 것으로 추정된다.
살이 아주 연하고 뼈도 연한데 맛은 싱겁지만 술병을 잘 고친다고 기록해뒀다. 물곰탕 1만3천원이다. 오후 2시 30분 ~ 5시 30분까지 저녁 준비 시간으로 영업을 잠시 멈춘다.
대게로 왁자지껄한 후포항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오면 아구지리탕으로 울진 현지 주민들의 발길을 끄는 곳이 있다. 펜션을 겸하는 가게다.
메뉴판에는 그냥 아구탕이라 쓰여 있다. 아구지리로 달라고 하면 허연 국물로 된 게 나온다. 특대, 대, 중, 소 네 가지 크기 중에서 4만원 짜리(소)면 남자 성인 2명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기막히는 육수다. 된장콩이 국물에 섞여있다. 육수 제조법을 물으니 집된장을 비롯해 대게살 등 재료를 갈아 넣었다고만 일러준다. 주변에 앉아 먹던 이들이 탄성을 지른다. 해장되는 소리다.
매일신문/김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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