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칼텍스와 '50:50' 합작… 6곳 각축전서 승리
LG는 호남정유를 내세워 1966년 5월 정부의 제2 정유공장 실수요자로 선정되면서 최정상의 기업집단으로 급부상했다. /GS칼텍스 제공 |
1960년대에는 제1, 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추진으로 점차 경제 규모가 확대됐다.
이에 따라 전기, 석탄, 석유 등의 에너지 소비도 점증해서 정부는 에너지정책을 종래 석탄 중심에서 열효율이 높은 석유 중심의 주유종탄(主油從炭) 정책으로 전환하고 정유시설의 확충에 관심을 기울였다.
국영기업인 대한석유공사(현 SK에너지)를 설립하고 1964년부터 가동했는데 1965년 한 해 동안 20억원의 초과이윤을 누려 관심이 집중됐다.
정유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다. 차제에 정부는 제2 정유공장 건설을 구상했는데 이 공장은 처음부터 민간 주도로 추진하기로 했다.
>> '석유중심 정책' 전환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관심을 표명한 기업들은 LG, 롯데, 한국화약 등이었다. LG는 제2 정유공장의 실수요자로 선정 받기 위해 1965년 가을에 가칭 한국석유화학공업을 설립하는 한편 사업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계획서에는 정유 사업은 물론 납사 분해, 폴리에틸렌 생산공장을 비롯한 석유화학공장을 망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연 매출 30억원에 불과한 락희화학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프로젝트였으며 정부에 의하여 거부됐다."('럭키40년사', P.34)
LG는 재차 사업권을 얻기 위해 기존 사업계획서를 변경, 정유 사업으로 사업범위를 한정하고 경영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1966년 2월에 일본 미쓰이물산(三井物産)과 정유공장 건설을 위한 3천만달러 차관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별도로 미국 Mobil사와 원유공급 및 운영자금 500만달러의 차관도입 계약을 체결하는 등 준비를 서둘렀다.
1966년 5월 정부는 제2 정유공장 실수요자를 공모한 결과 LG그룹의 호남정유를 비롯, 롯데그룹의 동방석유, 판본방직의 삼남석유, 한국화약의 삼양개발, 한양대재단의 한양석유 등 6개 기업이 응모했다.
>> 제2 정유공장 신설 지정
이 기업들은 공히 '해외 석유메이저들과 연결하여 합작공장을 설립한다'는 안을 제출했는데 한화계열의 삼양개발은 미국 스켈리와 일본 스미토모(住友)를 합작선으로, 롯데의 동방석유는 일본의 이토추와, 판본의 삼남석유는 미국 썬오일 및 컨티넨탈 등과 연계했다.
대한증권의 삼양석유는 일본 일면(日綿)과, 한양대의 한양석유화학은 미국 스텐다드와 각각 연결했다. 호남정유(현 GS 칼텍스)는 LG그룹이 국제신보를 인수하면서 사장으로 영입한 서정귀를 전면에 내세워 정부를 상대로 설득전을 전개했다.
그는 대구 사범과 경성법전을 졸업한 후 4, 5대 민의원을 역임하고 재무부 및 정무차관을 거친 지식인으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 사범 동기동창이었다.
그러나 실수요자 선정이 임박할 무렵에 호남정유의 합작 선인 미쓰이물산이 삼성그룹의 한비(韓肥) 밀수사건에 연루돼 국내 여론이 좋지 않자 호남정유는 합작 선을 미국의 칼텍스로 전환했다. 1966년 11월 17일에 제2 정유공장 실수요자로 호남정유가 지정되면서 치열한 각축전도 종료됐다.
1967년 5월 15일에 미국 칼텍스와 50대50의 비율로 합작, 호남정유를 설립함으로써 LG그룹은 최정상의 기업집단으로 부상했다.
항간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 사범 동창인 서정귀의 활약이 호남정유 실수요자 선정에 결정적이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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