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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의 한국재벌사·98]엘지-6 계열사수 2배로 신장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9-03-12 제14면

구자경 총수 부상한 1970년대 '비약적 다각화'

금성사
LG그룹은 1970년부터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면서 계열사수를 늘렸다. 사진은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 설립 사진. /LG그룹 제공

락희화학 '럭키'로 상호변경
면 메리야스 국내 최대 생산
日 합작 전기·전자부문 진출
중동붐 특수 해외건설 설립
대형슈퍼등 1400억대 매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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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12월 창업주 구인회 사망 당시 LG그룹은 화학, 전기, 전자, 무역, 언론 등 총 11개 기업군을 거느렸다. 삼성·현대그룹에 비해 계열사 수가 극히 적어 초라해 보인다. 이 무렵까지 LG그룹의 업종이 주력인 화학과 전자 등 비교적 단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금성사는 삼영수지(합성수지성형물), 성예사(목제부품류), 성철사(철제부품류), 성아사(정밀부품), 성요사(전자부품), 성주사(제품양산용 주물) 등 9개의 중소부품업체를 설립해 협력회사란 이름으로 경영했다.

구자경이 2대 총수로 등장한 이후 첫 다각화는 1970년 4월 범한화재해상보험을 서정귀와 공동 인수한 것이다. 새로 가동한 호남정유의 원유 수송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분산이 주된 이유였다.

>> '범한화재해상' 첫 인수

1972년에 락희화학을 (주)럭키로 상호를 변경하고 울주군 언양면 망양리 338일대 11만평을 매입해서 1979년까지 하이타이, DOP, 솔비톨, 옥당 등 대단위 울산공장을 완성했다.



1974년 7월에는 울주군 웅촌면 대대리에 510평의 공장을 확보하고 럭키포장(주)를 설립했다. 편직기 50대를 설치하고 부산 동래공장에서 생산하는 레자(인조가죽) 소재인 면 메리야스를 월 300대씩 임가공했는데 당시 단일공장으론 국내 최대였다.

또 LG그룹은 전남 여천의 제3 석유화학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1978년 3월 자본금 1억원의 럭키석유화학을 설립했다.

그해 11월 럭키석유화학이 나프타분해공장과 저밀도 폴리에틸렌공장 건설 실수요자로 선정돼 1979년 4월 저밀도 폴리에틸렌사업을 전담할 목적으로 럭키폴리케미칼(주)를 설립했다.

한편 이 무렵에는 전기 전자 부문에 대한 다각화 작업도 전개했다. 1970년 8월 금성사는 일본 알프스전기와 합작, 금성알프스전자를 설립했으며 12월 금성전기를 설립했다.

금성전기는 금성사와 금성통신으로부터 반송통신장치, 무선통신분야의 시설 및 영업권을 인수받아 전문화했다.

1971년 2월 금성전공을 설립해 전력 및 통신용 전선, 케이블판매업을 영위하다가 1975년 2월 희성산업으로 개명하고 사업 종목에 구룡광산 운영을 추가했다.

희성산업은 1978년 4월부터 그룹 내 홍보, 선전을 전담하는 House Agency(광고주의 자본 하에 있어 그 기업의 지배를 받는 광고대행사)로 재출발했다.

1971년 6월 22일에는 금성사의 투자로 설립된 부품공급 전담사인 성음사를 해체하고 대신 일본 포스터전기와 50대50으로 합작해 자본금 1억3천만원의 금성포스터를 설립했다. 라디오 및 TV용 스피커와 부품 등을 생산해 미국, 일본 등지에 수출할 목적으로 생산능력은 연 30만개였다.

1974년 6월 일본 후지전기와 합작해 금성계전을 설립했다. 산업용 전기기기사업의 전문화를 위해 금성통신에서 분리·설립한 것이다.

1976년 1월 서울 중구 도동 1가 3에 있는 삼주빌딩을 대우그룹으로부터 매수해 그룹 사옥으로 활용했으며 2월에는 금성정밀을 설립해 정밀기계분야에도 진출했다.

1978년 5월에는 에스컬레이터 등 승강기류 및 전동 공구를 생산하던 서통전기를 인수해 신영전기로 개명하고 승강기를 비롯한 중전기기분야에 참여했다.

>> 첨단산업시대 대비 시작


또 금성사는 서통그룹의 서통전기를 비롯한 서통전자, 서통정밀 등 3사의 주식 316만7천900주를 31억3천500원에 매입했다. 서통전자는 인수 직후 희성전자로 상호 변경해 1년간 운영한 뒤 1980년 7월 4일부로 해산했고 서통정밀은 인수 직후 해체됐다.

1978년 6월 2일에는 금전등록기 전문생산업체인 서흥전기의 발행주식 중 45.2%인 14만2천831주를 1억5천639만9천945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금전등록기 사업전망 불투명과 재무구조 악화로 1982년 12월에 해체했다. 1979년 9월에는 금성반도체를 인수하는 등 첨단산업시대를 대비했다.

화학 및 전기 전자 이외의 다각화 내역은 다음과 같다.

1971년 6월 한국광업제련(장항제련소)을 대한전선과 공동 인수하고 10월에는 부산문화TV방송을 인수했으며 1973년 6월에는 국제증권을 설립했다.

학교법인 연암학원은 1974년 3월에 연암축산고등기술학교를 설립했는데 1977년 3월에는 연암축산전문학교(현 연암대학)로 승격됐다.

한편 중동건설특수가 절정을 이룬 1977년 10월에는 해외 건설 수주를 위해 럭키해외건설을 설립했다. 1978년 2월에는 럭키개발이 세계산업을 인수·합병해 국내 건설업에도 진출했다. 또 1978년 10월 럭키엔지니어링을 설립, 토건 관련 소그룹을 형성했다.

이때 LG그룹은 유통업에도 진출했다. 1974년 유통업 근대화 및 대형화를 목표로 한 대통령 지시각서에 의해 대기업들의 참여가 가능해짐에 따라 그해 12월 럭키슈퍼체인(주)를, 1975년 9월에는 럭키체인스토아(주)를 각각 설립해 소매점의 연쇄 점화를 도모했다.

1976년 럭키슈퍼체인과 럭키체인스토아를 통합해 럭키체인(주)로 재발족, 대형 슈퍼마켓과 소형연쇄점을 종합관리했는데 서울과 안양, 의정부 등 총 11개의 대형슈퍼마켓과 체인점 20개소가 매출 1천400억원대를 기록했다.

LG그룹은 구자경이 총수로 부상하면서 다각화에 박차를 가한 결과 1969년 11개 계열사에서 1979년에는 23개로 증가했다. 1970년대는 LG그룹 창업 이래 가장 활발한 다각화기였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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