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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사서 고생하는 사서(司書)' 박현주 인천시교육청 화도진도서관 독서문화과장

김성호 김성호 기자 발행일 2019-06-26 제15면

"개항기 향토자료 소장 '특화도서관 선정' 시민사회 도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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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58) 화도진도서관 독서문화과장이 26일 퇴임식을 끝으로 34년 8개월의 사서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다. 박 과장은 퇴임 이후에도 도서관 주권운동에 몸담을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도서관 2층 향토·개항 문화자료관에서 만난 박현주 과장.

개관 준비때부터 참여 1999년 정부 공모서 '전국 유일 당선' 큰 역할
고문서·사진등 꾸준히 '수집' 각종 연구·전시·출판등에 제공 '뿌듯'
34년여 공직생활 '마침표'… 시민들을 위한 도서관 주권운동 펼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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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58) 인천시교육청 화도진도서관 독서문화과장에게는 '사서 고생하는 사서(司書)'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고생을 사서 한다니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박현주 과장은 이 별명이 싫지 않고 오히려 마음에 든다며 웃는다.

박 과장에게 이런 애칭을 붙여 준 것은 다름 아닌 지역 사회였다. 그가 만약 귀를 닫고 도서관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을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고,



발 벗고 나서지도 않았더라면 이런 '바보'같은 별명이 붙지 않았을 것이다.

박 과장이 34년 8개월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곧 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4일 화도진도서관을 찾아가 그를 만났다.

박 과장은 인천시교육청 소속 사서직 공무원이다. 1984년 10월 인천중앙도서관에 사서 9급과 '수서담당자'로 발령을 받아 사서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는데, 부평·화도진·서구·주안·연수·계양 등 교육청 소속 7개 도서관에서 순환 근무했다.

그 가운데 화도진도서관은 개관 준비부터 참여해 4차례나 근무했는데, 재직기간의 3분의 1을 화도진도서관에 보냈다.

화도진도서관은 개항기 향토 역사자료를 갖춘 '향토개항문화자료관'과 상설 전시실인 '향토개항문화전시관'을 갖춘 특화도서관으로 유명하다. 화도진도서관이 특화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며 자리를 잡기까지에는 박 과장의 역할이 컸다.

박 과장은 지역 공공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이고 지역 문화계, 역사학계, 시민사회단체 등 지역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뿐이라고 자신의 노력을 애써 축소하지만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화도진도서관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화도진도서관은 1999년 문화관광부의 특화도서관 지정 사업 공모에 선정된 것이 지금의 모습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공모에 당선되는 데는 박 과장의 노력이 주효했다. 그는 공모 기획서에 개항자료 특화 도서관으로서의 비전과 당위성을 잘 설명해 전국 1곳만 선정하는 특화도서관에 선정되는 성과를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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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진도서관 1층에는 도서관이 수집·보존해 온 소장자료를 상설전시하는 향토개항문화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박 과장은 "특화도서관 추진 배경에는 화도진이라는 지명이 가지는 역사성도 한몫 했지만, 무엇보다 당시 시민사회의 공감과 도움이 컸다"고 했다.

이어 "향토자료 수집의 필요성을 알게 됐고, 이를 계기로 도서관이 해야 할 의무라 여기고 관심을 기울이던 경험이 기획서 작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했다.

공모에 선정되면서, 당시에는 큰 액수인 1억원의 자료구입비를 지원받아 이를 종잣돈으로 자료를 꾸준히 확보해 현재는 고문서·지도·사진·엽서·마이크로 필름 등 비도서 1천600여점과 도서자료 9천500여권을 소장하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매년 500~1천만원은 향토자료 확보에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는 단순히 자료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곳에 활용되고 있다.

학자들의 연구와 저술, 각종 출판, 전시와 각종 행사, 문화 콘텐츠 제작 등에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료수집 범위를 개항기에서 벗어나 한국전쟁, 조선시대 등으로 점차 확대하고 있다.

수집된 자료 가운데에는 일본이 국립국회도서관이 소장한 '조선신보'의 마이크로필름을 입수해 제작한 영인본과 향토역사가 최성연의 '개항과 양관역정'의 원본, 문화재로 등록된 '해관문서', 1904년으로 추정되는 인천항파노라마 등이 있다. 그가 자부심을 갖는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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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과장은 "인천의 각 군·구 기초자치단체가 발행하는 군·구사(史)나, 각종 전시, 박물관 전시 등에 대부분 화도진도서관이 제공한 자료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도시의 기억은 기록으로 유지되고 완성되는데, 기억도 때로는 왜곡될 수 있기에 기록과 자료의 보존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이러한 활동이 공공도서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박 과장은 퇴임 이후 도서관 주권운동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는 시민과 사서, 도서관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인천시공공도서관 연구회'라는 이름의 공공도서관 연구 모임을 준비 중이다.

모임을 통해 도서관 정책과 도서관 환경, 도서관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도서관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다.

그가 모임을 주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임을 통해서 다 같이 고민하고 함께 공부하며 독서운동도 하는 등 지역의 문제를 모두가 고민하는 시민을 위한 도서관 주권 운동을 펴고 싶다는 뜻에서다.

박 과장은 "아직도 도서관 정책이 공급자 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데, 도서관 이용자인 시민이 참여할 창구가 없어 아쉽다"며 "문제를 지적하고 싸우는 대립적 관계가 아닌 협력적 관계로 도서관 정책을 제안하고 지원하는 시민 연구모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튜브에 영상이 넘쳐나고 있는 요즘 시대이지만, 결국은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들 수 있는 사유의 계기는 독서를 통해 마련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독서의 가치를 찾고 책을 읽는 환경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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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집필도 준비 중이다. 공공도서관의 사서로서 도서관 이용자와 교감한 경험과 생각, 또 우리나라 도서관이 지나온 역사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아내려고 책 얼개를 구상 중이다.

34년 8개월의 공공도서관 사서로서의 생에 종지부를 찍는 박현주 과장. 그의 대학교 후배인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은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그 사람 덕분에 인천의 문화가 더 풍성할 수 있었음을, 그 사람 덕분에 인천의 도서관이 좀 더 윤기를 낼 수 있었음을, 비록 그것을 이용하고, 누리는 사람들은 그 혜택을 누리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겠지만, 바로 그 사람 덕분에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누렸음을 나는 기억할 것이다. 퇴임을 앞둔 '누나'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임을 진심으로 믿는다. 누나의 시작을 축하하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한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박현주 과장은?

▲ 1984년 인천중앙도서관 사서로 첫 발령

▲ 2010년 인천개항자료전시관 설치

▲ 2010년 최성연 선생 기증자료 도록 '1960년대 인천풍경' 편찬

▲ 2011년 제5회 다산대상 청렴봉사상 수상

▲ 2017년 화도진도서관 향토개항 소장 도록 편찬

▲ 2018년 10월 화도진도서관 개관 30주년 '자료로 본 인천의 근현대' 전시

▲ 2019년 1월 한국도서관상 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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