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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대통령 휴가

이영재 이영재 발행일 2019-07-31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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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매년 한 달간 여름휴가를 보냈다. 이라크 전쟁이 터졌을 때도 워싱턴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별장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푸틴과 정상회담도 이곳에서 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매년 겨울 휴가를 고향인 하와이에서 골프를 치며 보냈다. 일주일간 휴가비용은 대략 4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45억 원에 이른다. 8년 재임 중 휴가비로만 1억 달러를 지출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휴가 중 숙박비는 본인 부담이지만 전용기 에어포스원 경비와 경호원 숙소 비용은 백악관 예산에서 지출됐다.

외국 정상들은 휴가 중 큰일이 생겨도 일정을 취소하는 경우는 드물다. 1995년 보스니아 특사가 지뢰폭발 사고로 순직했을 때, 콜로라도에서 3주 휴가를 보내던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장례식에 잠시 참석한 후 다시 휴가지로 돌아갔다. 2013년 5월 런던에서 2명의 모슬렘에게 영국군이 참수당하는 테러가 발생했지만,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사건 3일 후 스페인 휴양지로 휴가를 떠났다. 대통령이 집무실을 비워도 무탈하게 돌아가는 시스템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휴가를 쓰면서도 여론의 눈치를 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두 아들의 검찰 조사와 수해 등으로 2년간 휴가를 가지 못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수해가 발생하자 휴가를 중단하고 복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 때문에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휴가를 가지 못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달랐다. 취임한 지 보름도 안 돼 연차 휴가를 떠났다. 공교롭게 휴가 중 북한의 미사일 발사소식을 듣고도 휴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연차 휴가 사용 의무화'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혔다. 북한이 ICBM을 발사했을 때도 출발을 하루 늦췄을 뿐, 휴가를 다녀왔다.

그러던 문 대통령이 국내·외 현안으로 올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그런데 휴가 취소를 발표한 날 제주도에서 주말 휴식을 즐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청와대는 "주말에 다녀온 개인일정"이라고 했으나 지역 언론 보도 후 하루가 지나 사실을 인정해 모양새가 나빠졌다. 휴가 반납의 취지도 반감됐다. 미리 공개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통령이 누려야 할 당연한 휴가에 이처럼 말이 많은 건 그만큼 세상이 어수선하고 국민들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탓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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