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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꽃]수선화에게

권성훈 발행일 2019-12-03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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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성(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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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12월에서 3월 사이에 꽃을 피우는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애(自己愛)'다. 이 자기애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라는 청년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어느 날 나르키소스가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반해 빠져 죽은 물속에서 수선화가 피었고,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정신분석학적 용어가 여기에서 생겨났다. 이러한 슬픔을 가진 연약한 수선화는 이 시에서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과 동화되어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말을 남긴다. 행여나 인생이라는 바람 앞에서 언제 쓰러질 줄 모르는 우리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충고한다. 또한 나를 보고 있는 나로부터 나르시시즘의 눈을 존재하는 대상들에게 돌리면 '너를 보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는 바,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 것은 바로 독신에서 오는 것, 존재의 외로움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시냇물을 지나 강과 바다를 만나듯이 '산그림자도 저녁이 되면 마을로 내려오는' 이유 또한 '외로움 때문이다.' 보라, 당신이 혼자라고 느낄 때 심장의 '종소리도 외로워서' 가슴 속에서 당신 안으로 파고들면서 숨죽여 울려 퍼질 때가 있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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