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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우중 前 회장의 '유산'… '대우차·중공업' 두바퀴로 인천 산업화 밑거름

김민재 김민재 기자 발행일 2019-12-11 제1면

부평 한국지엠·동구 두산인프라
송도 포스코인터도 옛 실업 후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김우중(사진)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타계하면서 그가 인천 곳곳에 남기고 떠난 대우의 유산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산업화 시기 인천 성장의 주춧돌이 됐던 대우자동차와 대우중공업은 한국지엠과 두산인프라코어로 각각 바뀌었지만, 인천 사람들의 뇌리에는 아직도 '대우'라는 두 글자로 각인돼 있다.

대우그룹의 자동차 역사는 1978년 인천 부평에서 시작했다. 1962년 설립된 새나라자동차의 후신인 새한자동차의 국내 지분 50%를 산업은행으로부터 인수하면서다. 나머지 지분 50%는 GM이 갖고 있었다.



'대우자동차'라는 이름은 1983년 대우가 경영권을 갖고 GM이 기술·재무를 담당하기로 하면서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1980년대 후반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대우자동차는 급성장했다.

르망의 선전으로 국내 승용차 점유율 30%대를 나타내 업계 2위로 부상했다. 대우차는 인천의 경제지도를 바꿔놓았다. 대우차가 성장하는 만큼 인천의 자동차 부품과 수출 산업에 대한 대우차 의존도가 점차 높아졌고, 자연스레 일자리가 늘어났다.

부평 청천동, 산곡동은 '대우차타운'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노사 분규와 1992년 GM과의 완전 결별, IMF 사태가 겹치면서 대우차도 내리막 길을 걷다가 2000년 부도가 나고 만다.

결국 대우차는 2002년 GM에 매각돼 GM대우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발했다. 그리고 2011년 한국지엠으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대우'라는 이름은 28년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동구 만석동에 있는 두산인프라코어 역시 대우중공업의 후신이다. 대우는 1976년 당시 경영난을 겪고 있던 한국기계(옛 조선기계제작소)를 인수해 중공업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김우중 전 회장은 인수 1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고, 엔진부품 국산화의 선두주자가 됐다. 기계·조선·철도분야로 사세를 넓히던 대우중공업 역시 그룹 해체와 함께 분야별로 분할됐고 기계분야가 두산에 편입돼 지금의 두산인프라코어로 명칭이 바뀌었다.

인천에서 대우의 흔적은 송도국제도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송도의 68층 초고층 빌딩 포스코타워에 있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바로 김우중 신화의 출발이었던 대우실업의 맥을 잇는 회사다.

1999년 대우그룹의 워크아웃으로 분할 출범한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포스코그룹으로 편입됐고, 2015년 본사를 서울에서 송도로 옮긴다.

2016년 '포스코대우', 2019년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사명이 바뀌면서 '대우'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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