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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모래판 르네상스 이끄는 민속씨름 짐승돌' 수원시청 이승호·임태혁

김영래·손성배 김영래·손성배 기자 발행일 2020-02-05 제11면

국기 지정 될때까지 기술씨름으로 '무게 중심' 잡는다

이승호 임태혁 씨름선수1
수원시청 씨름단 소속 이승호(왼쪽), 임태혁 선수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 같은 체급인 두 선수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씨름의 부흥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비인기 종목 설움 딛고 '25년째 샅바'… 몸집 키우기 부단한 노력
개인별 3~4개 주특기, 상대 움직임 따라 자신도 모르게 여러 기술 사용
"이승호, 대기할때 눈 안 마주치더니 3초만에 넘겨" 맞대결 뒷얘기
위험운동 이유 학교공간 사라져 아쉬움… 日스모처럼 우리도 계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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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여전히 천하장사 이만기다.

이만기는 모래판 위의 짜릿한 승부사였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만인의 스타였다.

언제부턴가 모래판의 영웅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씨름은 명절날 KBS 1TV에 잠깐 비출 뿐 명맥만 유지됐다.



하나 이제 다시 씨름이다. 박진감 넘치고 멋진 승부를 다룬 씨름이 유튜브를 통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특히 경량급과 중량급을 가르는 금강장사들의 활약에 국민들의 눈이 쏠렸다.

버티다 먼저 지치는 선수가 지는 '황소 씨름'이 아니다. 금강급 씨름은 눈을 뗄 수 없다. 순간 승패가 판가름난다.

씨름 르네상스 중심에 수원시청 씨름단 '10초 승부사' 이승호(34), '기술씨름의 황태자' 임태혁(31) 선수가 있다.
이승호는 지난달 24일 열린 '위더스제약 2020 홍성설날장사씨름대회' 금강장사 결정전에서도 꽃가마를 탔다.

이날 금강장사를 포함해 8차례 금강장사, 1차례 통합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설날 대회의 결승 상대는 임태혁이었다. 임태혁은 통산 14차례 금강장사 타이틀을 차지한 실력자로 둘은 10차례 가량 맞붙어 5대 5로 박빙을 보였다고 한다.

같은 씨름단 소속이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평소 온몸으로 연마한 기술을 한껏 뽐냈다.

서로 훈련하며 부대낀 팀 동료 간의 맞대결은 설날 장사 씨름대회의 백미로 꼽혔다.

임태혁이 먼저 1점을 가져왔다. 이승호가 내리 2점을 따내 마지막 1점이 남았다. 마지막 승부처에서 임태혁의 선제 공격을 이승호가 되받아쳐 3대 1로 승리했다.

이승호는 "씨름 기술이 교본상 100개가 넘을 것"이라며 "보통 선수 개개인별로 3~4개의 주특기가 있는데, 순간순간 상대 움직임에 따라 대응하는 식이라 나도 모르게 여러 기술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둘의 기술은 예술적 경지에 다다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 씨름 채널에서도 인기다.

임태혁의 주기술은 밭다리, 잡채기, 배지기다. 이승호는 밭다리, 잡채기, 들배지기를 주로 쓴다.

경기가 시작되면 빠른 움직임으로 모래판 승부를 겨루고 씨름을 모르는 이들에게까지 쾌감을 안긴다.

임태혁은 "임기응변으로 몇 가지 기술을 순간적으로 해보면서 중심을 무너뜨리는 연습을 한다"며 "시합 때는 상황이 되면 어떤 기술을 써야지 하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 했다.

맞대결 뒷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임태혁은 "이승호 선수는 10초 승부사라고 불리는데, 사실은 3초면 다 끝낸다. 대기할 때부터 눈도 안 마주치고 불편해 하더니 3초에 넘기더라"며 웃었다.

이승호와 임태혁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장 한쪽 구석 모래판에서 꿈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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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임태혁은 친형을 따라 5학년 때 시작했다. 빵을 주니까 멋 모르고 들어갔다가 하다 보니 재미가 있었고 희열도 있었다고 했다.

문제는 체격이었다. 초등학교 선수의 경우 40㎏급이 최경량급인데 샅바를 처음 둘러맨 5학년 당시 30㎏ 밖에 몸무게가 나가지 않고 키도 작아 잘 못했다.

몸을 키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끝에 고교시절 85㎏까지 체중이 불어 처음으로 1등을 해봤다. 씨름 마이너리거의 메이저리그 정복기인 셈이다.

이승호는 방과후 축구도 하고 간식도 준다기에 씨름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임태혁과 달리 키는 컸지만, 너무 마른 것이 문제였다. 고교까지 70kg급 선수로 뛰다 몸을 키워 90㎏ 금강급에서 정상에 섰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모래판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은 두 장사는 25년째 샅바를 잡고 있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씨름이란


임태혁은 씨름을 "넘어지면 지고 넘기면 이기는 재미있고 매력적인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복잡하지 않은 규칙을 토대로 누구나 편하게 경기를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는 것이다.

이승호는 씨름을 정의하기 어려워하면서도 국기(國技) 지정을 호소했다.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씨름이라는 스포츠가 한국에 존재했다. 일본의 인기 스포츠 스모처럼 국기로 지정해 민속성을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태권도를 한국 대표 스포츠로 배우듯이 활성화해서 체력을 연마하기 정말 좋은 운동이 씨름"이라며 "IMF 이후 기업이 힘들어지면서 인기가 사그라지고 학교에 설치했던 씨름판도 위험하다는 이유로 없어져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두 선수 모두 씨름이 국기가 될 때까지 모래판에서 땀을 흘리겠다는 결기를 보였다.

씨름은 지난 2017년 1월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됐다. 한민족 특유의 공동체 문화를 바탕으로 유구한 역사를 거쳐 현재까지 전승된 민속놀이가 바로 씨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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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의 역사


가장 오래된 씨름의 자취는 '치우희'라는 명칭이다. 치우희는 역사서에 나오는 전설적인 무신 '치우천왕'의 이름을 딴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의 후한서와 우리나라의 조선상고사에도 씨름 관련 '각저희'와 '씰흠'으로 기록이 남아있다.

민속씨름(프로씨름)은 1982년 4월 민속씨름위원회 발족을 원년으로 한다.

1983년 출범을 알린 민속씨름은 같은해 4월14일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개최했다.

출범 당시 태백급, 금강급, 한라급, 백두급 4체급으로 시작했지만, 1987년 12월 태백급을 없앤 3체급으로 운영하다 1991년 5월에는 금강급까지 없애 백두급(100kg 이상), 한라급(100kg 이하)만 운영하고 단체전을 신설했다.

민속씨름 탄생 이후 씨름이 점차 인기를 더해가면서 일양약품, 보해양조, 럭키증권, 현대, 삼익가구, 부산조흥금고, 인천 등 팀이 창단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잇단 팀의 해체로 인해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마지막 남은 현대 팀이 한국씨름연맹에서 탈퇴해 실업팀으로 전향하면서 민속씨름을 관장하던 한국씨름연맹은 씨름단(회원단체)없이 단체만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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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전국씨름연합회와 대한씨름협회가 통합해 각종 위원회를 설치하고 씨름 중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5년 4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신청서를 제출해 2018년 남북공동 등재하는 쾌거를 이루면서 씨름의 세계화도 꿈꾸고 있다.

글/김영래·손성배기자 yrk@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이승호는

▲ 1986년 1월17일생. 만 34세

▲ 키 185㎝ 몸무게 90㎏

▲ 대구 영신고등학교

▲ 인하대학교

▲ 2020 설날대회 등 8회 금강장사, 1회 통합장사

■임태혁은

▲ 1989년 1월14일생. 만 31세

▲ 키 183㎝ 몸무게 93㎏

▲ 공주생명과학고

▲ 경기대학교

▲ 2019 용인대회 등 13회 금강장사, 1회 통합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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