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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얼빠진 軍

이영재 이영재 발행일 2020-04-27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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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 빠진 오합지졸 군대를 '당나라 군대'라고 한다.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그 연원은 확실치 않다. 당이 어떤 나라인가. 태종 이세민의 나라다. 건국 초기만 해도 중국 왕조 가운데 가장 강성했던 국가였다. 동쪽으로는 요동을 서쪽으론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고구려의 아들 고선지 장군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까지 동서 비단길을 연 것도, 나침반, 제지술 등 화려한 문물을 서방에 전한 것도 당이었다. 그런데 '당나라 군대'라니.

대부분 왕조가 그렇듯, 당나라도 후기로 가면서 군역 제도의 결함과 그에 따른 지휘관의 비리와 지도층의 부패로 군이 오합지졸이 된 것은 분명하다. 8세기 전후 양귀비와 염문을 뿌린 당 현종 때부터 전력이 급속히 약화하면서 중반에 이르자 토번(티베트)과 돌궐(위구르) 등의 침략에 당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토번의 공격에 수도 장안을 내준 적도 있었다. '자치통감'에 당나라군이 전쟁에 나갔다 하면 '연전연패'했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안사의 난'을 전후해 당 왕조가 부패와 무능으로 급속히 쇠락하면서 당군은 오합지졸이 됐다. '당나라 군대'라는 말이 이때 나왔다는 말이 있다.

요즘 우리 군의 기강이 도를 넘었다고 지적하는 소리가 높다. 군기 문란에 기강해이까지 마치 "당나라 군대 같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경기도의 한 육군 부대에서 병사가 야전삽으로 여군 중대장을 폭행하는가 하면, 충청도의 육군 부대에서 남성 부사관들이 상관인 남성 장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군사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육군 전방부대에서는 카카오톡 단체 방에서 암구호를 공유한 사병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군 시설에 민간인이 무단침입한 것도 한 두건이 아니다. 최근엔 대령이 최고등급 보안구역에 마이크를 설치해 3개월간 엿듣다 적발된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오죽하면 점잖기로 소문난 정경두 국방장관이 "불합리한 부대 지휘에 의한 장병 인권침해, 상관 모욕, 디지털 성범죄 및 성추행, 사이버 도박 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장관 지휘 서신을 내렸을 정도다. 이러니 우리 역시 '당나라 군대'를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모두 휴대전화를 전면 허용하고, 급여를 올려주는 등 장병 복지에만 신경 쓰는 사이 군기가 흐트러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정은 유고설이 나오는 마당에 우리의 얼빠진 군, 해도 해도 정말 너무 한 거 아닌가.



/이영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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