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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공공기관 이전 발표, 특별하지 않은 보상·공정치 않은 희생

김성원 발행일 2021-02-22 제19면

공공기관 몇개 옮긴다고 지역균형발전 안돼
노동자 사정 관심 없고 무조건 희생만 강요
주권은 국민인데 말 한마디로 '권리' 짓밟혀
'존경하는 1380만 도민'에 우리는 없나보다


증명사진
김성원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노동조합 위원장
지사님의 노동존중이 허언인 건 알고 있었다. 노동이사제 공청회 날 인재개발원 강당에 모인 기관 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언성 높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도를 만들었으니 따라라. 1차, 2차 기관 이전 때도 같았다. 갑자기 발표가 났고, 대상이 된 기관 직원들은 갑님의 발표에 어안이 벙벙했다. 기자회견을 보면서 공공기관 생활하며 공무원들의 노예 취급, 정치인들의 장기 말 취급당한 생각이 더해 화가 났다. 해서 무서운 게 없어져 지사님과 비서실 분들 불쾌할 얘길 좀 해야겠다.

우린 안다. 공공기관 몇 개 옮긴다고 지역균형발전 안 된다. 수가 적기 때문이다. 도내 27개 공공기관 종사자를 합쳐봐야 5천여명. 그 가족까지 다 해도 1만5천명이나 될까? 다 가는 것도 아니다. 이 인원이 옮겨서 균형발전이 될까? 꼭 맞는 표현이 있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지사께서 발전 지체의 이유를 말씀하시지 않았나. 중첩된 규제, 군사 안보, 상수원 관리 등. 당신께서 말씀하신 문제의 답은 규제를 풀고 인프라를 까는 것이지 공공기관 몇 개 옮기는 게 아니다. 마중물 역할? 중앙정부서 역량과 예산 동원해 만든 혁신도시며 기관 이전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10년이나 걸렸는데도 그랬다. 정책 실패란 예산 낭비다. 안 된다가 아니라 어렵단 얘기다. 그런데도 이토록 급하게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 재선 앞둔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업적 보여주기 수요와 대통령 가는 길 표 장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건 아닐까? 우려가 된다. 이래선 지역민들이 누릴 혜택은 별로 없거나 전혀 없을 것이다. 특별한 보상이란 얘긴 그래서 틀렸다.

지사님 말씀 중 맞는 건 있다. 세금으로 봉급 받는 노동자로서 책임을 해야 한다. 가라면 가는 게 도리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란다. 그래도 화가 난다. 균형개발 대의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우리 기관만 해도 통합에, 무기직 전환에, 시설운영직 전환에 지난 5년이 전쟁이었다. 정책이라고, 하라고 해서 한 일이다. 여전히 후유증이 가득하다. 며칠 전에도 무기직 직원 인건비 얘길 듣고 화가 났다. 자기네들이 전환하라고 해놓고 돈은 못 준단다. 새삼 스쳐가는 정치인들, 공무원들이 공공기관 노동자를 숫자, 금액, 퍼즐 조각 따위로 여긴다는 걸 느꼈다. 그간 무수히 내리꽂은 낙하산들, 캠프 출신들, 오늘 경기도의 갑 오브 갑인 비서실 사람들의 갑질을 보면서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삶의 토대를 만들라? 어린이집은?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은? 대입 앞둔 고등학생들은? 노모를 부양하는 사정은? 누구도 우리 사정엔 관심이 없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무조건적으로 희생만 강요한다. 이 희생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는 고통은 대부분 갑들의 '제멋대로'가 이유다. 공공기관 직원이 되려고 노력한 사람들, 되지 못한 사람들, 세금을 내는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라고? 어려운 공채 시험을 뚫고 입사한 신입 직원들은 무슨 죄가 있나? 수십년간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일가 이룬 사람들에게 공공기관 직원이란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짐을 싸라니? 선출된 권력이라도 그 근간은 헌법이고 민주주의다. 우리 헌법은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정한다. 우리도 국민인데 우리 권리는 말 한마디로 짓밟힌다. 지방 발령 내놓고 '까라면 까라'는 사장님들과 지사님의 논리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존경하는 1천380만 경기도민" 중에 공공기관 종사자는 없나 보다. 이젠 당신의 노동 존중은 믿지 않으련다.

일전에 조세재정연구원의 지역화폐 비판에 역정 내던 지사님 모습을 보며 민주주의 체제 지도자의 모습과 거리가 있어 보여 의아했다. 표현의 자유는 근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근본 가치다. 시민의 의견도 당신 생각과 다르면 호통치고 징계주라 하실 건가? 이번 발표에서 나는 노동자의 권익과 주권자 개인이 진 삶의 무게를 쉽게 계량하는 모습을 또 봤다. 정책이라 필요하면 개인의 권리는 없다는 듯 또 밀어붙이실 건가? 현시점 내년 가을에 청와대 계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 저분이 만드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정말 무섭다.

/김성원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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