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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주방용품 CEO에서 나눔문화 선봉장으로… 이순선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신지영 신지영 기자 발행일 2021-12-08 제14면

"기부 받는 행복은 100%, 남에게 주는 행복은 200%"

인터뷰 공감 이순선 경기사랑의열매 회장5
지난 1일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순선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은 "올해 사랑의열매의 기부 캠페인 슬로건은 '나눔, 모두를 위한 사회백신'"이라면서 "코로나19 시대에 꼭 맞는 말이다. 기부로 받는 사람의 행복은 100%이고 남에게 주는 행복은 200%"라고 강조했다.

1984년 무교동에 등장한 구멍 뚫린 삼겹살 불판은 평범한 40대 주부를 수출 금자탑을 달성한 주방용품 회사 CEO로 만들었다. 또 인생의 절반가량을 살았을 무렵 찾아온 극적인 생애 전환은 그를 기부문화로 이끌었다. 경기도 기부문화의 선봉장, 이순선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불판 나비효과'의 주인공이다.

매년 12월이면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의 도청오거리엔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진다. '사랑의 열매'로 널리 알려진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연말연시 기부의 목표 달성을 확인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이다. 코로나19로 2년째 조촐한 온도탑 행사가 열린 지난 1일,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서 이순선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의 삶은 전반전과 후반전이 나뉜 축구경기처럼 확연히 구분된다. 아들 둘에 경찰 공무원 남편을 둔 평범한 가정 주부로서의 삶이 전반부라면 성공한 주방용품 회사 CEO로 해외 수출에 앞장서며 기부에 몰두하는 것이 후반부다.

삶의 극적인 반전은 1984년 시작됐다. 큰아들이 고등학생, 작은아들이 중학생이었던 시기였다. 지금은 흔해진 '필수 아이템'인 구멍 뚫린 삼겹살 불판을 만들어 발로 뛰며 영업에 나선 것이다. 대상은 서울 중구 무교동 일대의 삼겹살 가게였다. 기름 빠지는 삼겹살 불판이 처음부터 호응을 받았던 건 아니다.



식당에 가서 5개 세트로 구매하면 1개를 끼워 넣어주는 영업을 하는가 하면 무쇠 불판의 표면 코팅이 까지면 무료로 교환해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이 회장은 "당시에 무쇠 불판을 만드는 공장이 뚝섬에 있었어요. 삼겹살 가게는 아무래도 장사하는 곳이니까 불판을 살살 다루지 않거든요. 얼마든지 문지르고 씻고 쓰고 싶은 대로 쓰고 나중에 요청하면 공짜로 새 걸로 바꿔줬죠. 쇳물을 부어 주물로 불판을 만드니까 쓰던 불판을 가져다가 다시 녹여서 새것으로 만들면 그만이었거든요. 그렇게 가게와 공장을 오가면서 영업을 했더니 식당하시는 분들도 믿고 많이 사더라구요"라고 회상했다.

1984년 사업을 시작해 1985년 사업자 등록을 하고 1994년 법인을 설립하기까지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이 열릴 때는 직접 길거리에서 불판을 놓고 호일 위에 삼겹살을 굽는 시연까지 했다. 당시엔 아파트 단지마다 정육점이 있었다. 이 회장은 이 아파트 정육점을 타깃으로 잡았다.

정육점 영업을 통해 기름이 저절로 빠지는 고기 불판을 팔기 시작하니 금세 입소문을 탔다. "써보니 좋거든요. 미국에 있는 딸한테도 보내고 며느리한테도 주고 그렇게 호응을 얻었죠."

주부로 살다가 인생 후반부 성창베네피나 설립 삼겹살 불판 만들어 영업 나서
'탈부착 손잡이' 테팔과 특허문제 위기 극복… 일본시장 '없어서 못 판다' 대박
사스 창궐 2000년 초반 자선패션쇼 모금운동 시작 해비타트 운동에 힘 보태


이후 그에게 운명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 유통상이 한국을 찾아 우연히 이 회장의 기름 빠지는 불판을 접한 것이다. 호텔까지 불판을 들고 간 바이어는 직접 제품을 사용해보고 이 제품을 일본에 유통하기로 한다.

이 회장이 설립한 성창베네피나는 주방용품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기업이다.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대부분의 매출이 일본에서 발생한다. 이 회장은 "그때 인연을 맺은 니가타현·후쿠오카·규슈 지역 바이어와 지금까지 30년 넘게 관계를 이어오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인터뷰 공감 이순선 경기사랑의열매 회장14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던 이 회장의 사업도 세계 정세 변화에 따라 굴곡을 맞는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걸프전이 발발하며 수출 전선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당시 가내 수공업 형태로 주방용품을 많이 생산한 대만에 시장 점유율을 상당 부분 내주게 된다.

연이어 더 큰 위기가 다가왔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주방용품 기업 테팔이 성창에 도전을 해온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프라이팬이나 냄비에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손잡이'였다. 테팔은 자사 주방용품에 탈부착이 가능한 손잡이를 내세워 시장을 석권했는데 같은 원리의 제품인 성창에 배타적 권리인 특허권을 주장한 것이다.

테팔과 성창은 일본 시장을 두고 격돌했다.

이 회장은 "(탈부착)손잡이를 한국에서 제가 개발했어요. 일본에서 팔려하니까 테팔이 내용증명을 보내서 일본에서 팔면 바로 소송을 건다고 나온 겁니다. 국내에서 특허는 제가 냈어요. 특허를 내면서 세계 특허부터 시작해서 기술까지 모두 검토했어요. 저희 제품은 독자적인 특허를 가진 별도 제품인 게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이 소송을 걸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까 일본 바이어들이 위축된 거예요. 그래서 변리사를 데리고 일본에 갔습니다. 바이어 사무실에 가서 우리가 검토한 서류를 딱 펴 놓고 '아무 문제 없다'라고 설명을 했어요. 여러 바이어 중에 딱 1분이 '오케이 우리는 성창 꺼 판다'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바이어한테 1년 동안 제품을 독점 공급했어요. 결과는? 소위 '대박'이 났죠. 제가 장담했습니다. 만약에 소송이 걸리고 (테팔에)지면 제가 다 부담한다. 전혀 이거(우리 제품)하고 (테팔 제품은) 상관없다. 그걸 믿어줬기 때문에 서로 성공할 수 있었죠"라고 설명했다.

매년 수백억원 매출을 올리고 일본 홈쇼핑에서 "성창 제품은 없어서 못 판다"고 할 정도로 깐깐한 일본 소비자에게까지 인정받은 성창. 이 회장은 이웃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해비타트'로 기부와 연을 맺는다.

사스가 창궐한 2000년 초반, 또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쓴 지난해와 올해를 빼고 매년 해비타트에 참여해 왔다. 또 그는 직접 서울 고급 호텔에서 기부 캠페인을 위한 자선 패션쇼를 열어왔다. 패션쇼를 관람할 수 있는 테이블 하나에 200만원씩, 매년 70테이블씩 팔고 모금해 해비타트 운동에 보태왔다.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는 용인상공회의소 회장을 하던 시절 만나게 됐다.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고, 이어 회장으로 기부 선봉에 서게 된 것이다.

그는 "올해 기부 캠페인 슬로건이 뭔지 아세요? '나눔, 모두를 위한 사회백신'이에요. 사랑의 열매 직원들 아이디어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코로나19 시대에 꼭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어렵다 보니 기부를 얘기하는 게 사실 어렵습니다. 제 거를 주는 건 좋은 데 남에게 '기부하라' 이렇게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저도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나눠 줄 때 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봤기 때문에 자신 있게 '기부하면 좋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기부로 받는 사람의 행복은 100%이고 기부로 남에게 주는 행복은 200%에요. 그동안 나름대로 뭐 하나라도 주변에 주고 살려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잘 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흔한 말이지만 나눌수록 즐거움이 옵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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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이순선 회장은?

▲ 1946년 대구 출생
▲ 대구 효성여고 졸업
▲ 1986년 성창금속 설립
▲ 2001년 성창베네피나로 상호변경
▲ 2009년 용인여성기업인협의회 회장
▲ 2012년 용인상공회의소 회장
▲ 2015년 경기도상공회의소 부회장
▲ 2017년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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