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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토리] '건설 혁신' 시행 1년… 소규모 업체 '고사 위기'

강기정 강기정 기자 발행일 2022-02-25 제10면

무너진 업종 칸막이… '덩치' 밀린 전문건설업 붕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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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지난 17일 국회 앞. 300명 가까운 건설인들이 모여들었다. 소속은 달랐지만 모두 대규모 종합건설업체와 경쟁하기엔 여력이 되지 않는다며 정부·국회를 향해 한 목소리를 냈다(사진).

24일에도 세종시 국토교통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계획했지만 다음 달로 연기됐다. 정부의 제도 개정 이후 무한 경쟁에 내몰리며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전문건설업체, 그리고 시설물유지관리업체들 얘기다.

당초 전문건설업체만이 수주할 수 있던 전문공사를 지난해부터는 종합건설업체도 맡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전문건설업체들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여기에 전문건설업체 중 시설물유지관리업체는 아예 업종을 없애기로 결정, 종합건설업이나 다른 전문건설업으로의 전환 압박을 받고 있는데 기존 업계에선 다른 업종으로 편입됐을 때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하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건설업계의 어려움이 적지 않은 가운데, 이들 업계의 한숨이 더욱 깊은 이유다.

# 전문건설업체 "칸막이 사라진 후, 설 곳이 없어졌다"


시작점은 2018년 발표된 건설 산업 혁신 방안이다. 국토교통부는 성장 한계에 직면한 건설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직접 시공 대신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한 생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40년 이상 변동이 없던 업역·업종 개편을 결정했다.

기존에는 종합공사는 종합건설업체, 전문공사는 전문건설업체만 맡을 수 있었는데 이런 규제를 없애면 시공 역량 중심으로 건설 시장이 재편되고 하도급이 만연한 건설 현장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서다.

치열한 갑론을박이 뒤따랐다. 전문건설업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2018년에는 건설산업기본법이, 2020년에는 시행령이 차례로 개정됐다. 그리고 지난해, 공공 공사부터 적용이 시작됐다.

국토부 '다단계 하도급' 개선 목적
40년 이상 지속된 '업역 구분' 없애
종합건설사, 전문건설 진출 길열어
규모 작은 전문건설계 경쟁력 우려


칸막이가 사라진 지 1년,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처참하다는 게 전문건설업체들의 주장이다.

전문건설업체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데다 업체 10곳 중 9곳 꼴이 1~2개의 특정 공사에만 특화돼있어 많게는 십수개의 면허가 필요한 종합 공사를 수주하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종합건설업체는 그렇지 않았다. 칸막이가 허물어지자 기존에 전문건설업체에서 맡아왔던 공사들까지 다수 수주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까지 공공 공사에서 전문건설업체가 수주한 종합 공사는 8천660건 중 7.5%인 646건에 불과했다. 반면 종합건설업체가 맡은 전문 공사는 전체 1만3건 중 30.8%인 3천81건이었다.

당초대로라면 종합건설업체는 6조1천871억원의 종합공사를, 전문건설업체는 3조8천218억원의 전문공사를 각각 맡았을 것이다. 그러나 종합건설업체들은 종합 공사와 전문 공사를 더해 모두 6조8천775억원을, 전문건설업체들은 3조1천314억원을 수주하게 됐다. 7천억원 가까이 손실이 난 것이다.

공공부문 우선 적용 결과 '현실로'
지난해 전문건설업계 '7천억 손실'


민간 공사에서도 칸막이가 사라지는 올해, 이 같은 상황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건설 시장에서 공공보다는 민간 공사의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다.

공공 공사에서 드러났듯, 민간 공사에서도 전문건설업체들이 설 자리는 결국 없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우려다. 2024년부터는 금액 규제도 사라져, 지금은 종합건설업체가 도전할 수 없는 2억원 미만 소규모 공사 역시 무한 경쟁 체제가 될 가능성도 걱정하고 있다.

정부는 1~2개의 면허를 보유한 전문건설업체들이 각각 연합해 종합 공사를 수주할 수 있게끔 길을 열었지만, 이 같은 컨소시엄 구성은 2024년부터 가능해 그때까지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건설업체들의 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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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설물유지관리업체 "이대로 있으면 2년 뒤에 사라진다"

전문건설업체 중 시설물유지관리업체는 아예 사라질 처지다. 업종 자체가 2024년이면 폐지돼서다. 무한 경쟁 체제 속 생존 위기에 내몰린 전문건설업체들과는 또 다른 경우다. 이 역시 건설 산업 혁신 방안의 일환이다.

업역 폐지와 더불어, 업종 개편이 추진됐는데 기존 전문건설업 세부 업종을 통합해 간소화하는 한편 시설물유지관리업은 2024년에 없애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아 2020년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정부는 시행령 개정 전 입법예고에서 "시설물유지관리업은 완성된 시설물의 모든 공종에 대한 개량·보수·보강 공사를 시공할 수 있어 특정 공종 관련 전문성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고 종합공사 및 다른 전문공사 업종의 업무영역과 중복돼 잦은 분쟁이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시설물유지관리업의 폐지 이유로 거론했다.

시설물유지관리업체들이 종합건설업 또는 다른 전문건설업으로 전환할 경우 "특정 공사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고 신축 공사와 유지 관리 공사간 연계성을 높여 기술의 융·복합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시행령 개정에 따라 기존 시설물유지관리업체는 2023년 12월까지 종합건설업 또는 다른 전문건설업으로 업종을 전환해야 회사를 유지할 수 있다.

2년뒤 폐지되는 '시설물유지관리업'
"업종 전환이후 생존 어려워" 반발
인권위, 2029년까지 폐지 유예 권고


반발은 심했다. 그러자 정부는 다양한 유인책을 꺼내들었다. 전환 시 기존 시설물업 실적의 최대 50%(2021년, 올해는 30%)를 가산해줬고 새 업종에서 갖춰야 할 각종 등록 기준도 2026년까지는 면제했다. 또 전환하더라도 2023년까지는 기존처럼 보수·보강 공사 등을 수주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전환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경기도회에 따르면 경기도내 시설물유지관리업체 1천20개 중 430개 가량이 종합건설업 등으로 전환을 마쳤다. 전환에 대한 압박도 거세지는 추세다.

지난달 국토부는 "올해 전환하면 종전 시설물업 실적의 최대 30%가 가산되지만 내년에 신청하면 가산비율이 10%로 낮아진다. 가급적 빨리 신청할수록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전환한 업체 상당수는 종합건설업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작은 시설물유지관리업체들이 종합건설업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고 해서, 몸집 큰 종합건설업체들 사이에서 과연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전환 이후의 전망이 어둡다는 것이다. 시설물유지관리업계가 쌓아온 유지·관리에 대한 전문성과 노하우가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 안전 사회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시설물유지관리업 폐지를 2029년까지 유예할 것을 국토부에 권고한 상태다.

시설물유지관리자의 역할을 규정한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상존하는 상황 속,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해 업종을 폐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 등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 법률 심판이 제기된 점도 변수다.

# 이성수 대한전문건설협 경기도회장

타 산업은 정부가 보호하는데…


회장님 발언
수천억원의 대규모 공사를 시공해야 하는 종합건설업체가 이제 2, 3억짜리 소규모 전문공사 시장까지 마구잡이식으로 진입해 싹쓸이 수주하고 있다.

제도상으로는 전문건설업체도 종합공사를 수주할 수 있지만 대부분 진입 장벽을 넘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다른 산업에선 소규모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하는데 건설업에선 오히려 정부가 소규모 전문건설업을 말살하고 있다.

# 민진용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 경기도회장

안전 노하우·전문성 사장시켜…


민진용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경기도회장
건물 붕괴 등 대형 안전 사고가 발생한 이후 시설물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법이 마련됐고, 우리 업종이 생겼다.

안전을 어느 때보다 강조하는 지금, 우리 업종을 없애는 것은 오히려 시설물 안전에 대한 노하우와 전문성을 사장시키는 부적절한 결정이다.

다른 업종으로 전환했을 때, 생존에 대한 전망도 암울하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대한전문건설협회 경기도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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