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수씨는 불법 촬영과 주거침입 피해자 신분으로 경찰서를 방문했는데, 경찰이 당초 현장에서 주거침입 혐의만 적용했기에 형사과에서 진술해야 했다.
사건의 본질인 불법 촬영 혐의에 대한 고소장은 별도로 써내야 했다. 이 때문에 혜수씨는 자신이 불법 촬영 피해자라는 증거를 직접 모아 고소장을 써낸 후에야 여성청소년과 수사관들을 대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혜수씨는 "여성청소년과 수사관들에게 '성범죄로 단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불법 촬영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가 담긴 영상을 보여주며 수사관들을 설득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인천의 한 다중이용시설 여자화장실 입구에 '불법촬영은 범죄입니다!'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발생한 지 약 4년이 지났지만, 유사한 또는 이보다 진화한 수법의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인지역 디지털 성범죄 대응 및 피해자 지원 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피해자의 절반가량은 10·20대 여성이었다. 2022.3.2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피해자가 여러 부서를 찾아 각각 진술해야 했던 점에 대해선 "원스톱 시스템을 갖췄음에도 여러 번 진술을 반복하게 한 부분은 유감"이라며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정 조치했다"고 덧붙였다.
경찰 진술 최소화 시스템 무용지물
'성범죄' 불기소… 주거침입만 적용
"9개월 지났는데 여전히 불안 떨어"
원스톱 시스템은 성범죄 피해자에게 여성경찰관 등 전담 수사팀을 배정해 피해자가 진술을 최소화하도록 돕는 것인데, 혜수씨 사건의 경우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경찰은 혜수씨의 고소장을 접수한 지 닷새 후에야 A씨가 제출한 휴대전화에 대해 디지털 포렌식을 했지만, 별다른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A씨는 지난해 11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미수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혜수씨와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혜수씨는 "사건 이후 9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경찰의 신변 보호를 믿을 수 없어 사설 보안업체까지 신청했다"며 "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이러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편, 가해자 A씨는 주거침입 혐의로 4월께 열릴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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