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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내가 바로 제빵왕 김탁구"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영모 명장

김순기 김순기 기자 발행일 2022-04-13 제14면

50년 열정 레시피 공개 "우리 브랜드만 최고 되는 게 목표 아니다"

인터뷰공감 김영모 제과명장14
지난 8일 성남 '파네트리 제과명장 김영모'에서 만난 김영모 명장은 "대한민국 명장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후진들에게 기술이나 노하우를 전달하는 게 의무"라고 말했다.

어린시절 부모가 이혼하면서 전남 해남 작은아버지 집에 맡겨져 눈칫밥을 먹다 빵집에서 일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16살 때 무작정 대구로 나와 조그만 제과점에 발을 들여놓았다.

1982년 서울 서초동에서 단 19.8㎡짜리 가게로 제과점을 시작해 지금은 성남·서울 등에 8개 제과점과 35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성공한 CEO가 됐다.

1995년에는 유산균 발효법, 2000년에는 과일을 이용한 천연발효법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해 한국인에게 맞는 빵의 풍미를 찾아냈다.

1998년 노동부 선정 대한민국 제과기능장 제1호로 등극했고 대한제과협회·대한민국명장회 회장 등의 경력에 세계 쿡북대회 대상·은탑산업훈장·장한 한국인상·대통령 국민포장 등을 수상했다. 2010년 6월9일부터 KBS 2TV에서 30부작으로 방영돼 최고시청률 49.3%를 기록한 '제빵왕 김탁구'의 실제 모델이다.

# 빵지순례 성남 '파네트리 제과명장 김영모'
빵은 3시간만 지나도 맛이 떨어지기 시작해
판교·수지·강남권과도 가까워 문 열게 돼
'AI 핸드드립 머신' 들여놓고 개인 박물관도


'제과제빵업계 살아 있는 전설', '제과명장 1호', '동네빵집에서 성공한 덕후', '빵굽는 CEO' 등의 수식어가 붙어 있는 김영모 명장의 삶을 압축하면 이렇다.



인터뷰공감 김영모 제과명장27

특정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고 남 부러울 것 없는 위치에 서 있지만 칠순을 바라보는 김영모 명장은 지금도 여전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4~5시간 현장에서 빵을 굽는다. 빵을 위해 살아왔고 여전히 빵과 살아가는 게 그의 인생이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오전에 일본이나 프랑스 등 유럽의 제과관련 잡지나 책을 들여다보며 세계 제과제빵 흐름을 살펴본다. 이후 빵 공장에서 후진들을 지도하며 함께 빵을 만든다.

김 명장은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첫 번째 재료가 좋아야 한다. 두 번째는 정확한 공정이다. 똑같은 배합이라도 공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난다. 발효가 덜 돼도 맛이 달라진다. 정확한 공정이 풍미 있는 좋은 제품을 만든다"고 말했다.

좋은 제품과 함께 새로운 제품에 대한 열정도 그에게는 생명줄 같은 것이다. 긴 세월 끊임없이 빵을 구우면서도 그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세계를 다니며 자료수집과 연구개발에 주력했다.

한국에 맞는 독창적인 자연발효법을 개발하고 새로운 제품들을 선보였다. 속칭 빵돌이, 빵순이들 사이에서 3대 시그니처 메뉴로 꼽히는 '몽블랑', '마늘 바게트', '바게트 샌드위치'가 그런 제품들이다.

최근에는 최윤정 디자이너와 손잡고 명장의 정성이 들어간 쿠키와 고품격 포장으로 꾸며진 '김영모 봄봄'을 내놓았다. 제과제빵의 수준을 답례품이나 기업·단체 선물용으로 한 단계 높인 제품이다. 그는 "요즘에는 제주도의 당근, 비트 등을 이용한 친환경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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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에 대한 쉼없는 열정과 더불어 일종의 사명감도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김 명장은 2020년 10월에 수도권에서는 처음으로 성남시 시흥동에 '파네트리 제과명장 김영모'를 오픈했다. 이곳은 현재 '빵지순례' 장소로 자리 잡으며 성남의 명소가 됐다.

그는 "우리 빵을 구입하고 싶어 하는 성남, 용인, 수원 쪽 시민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어떤 빵은 3시간만 지나도 맛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던 끝에 현재의 장소에 오픈하게 됐다. 판교, 분당은 물론 수지나 광교와 가깝고 강남권과도 15~20분 거리"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판교 등 젊은 층의 취향을 고려해 프리미엄급 원두를 최적화된 공식으로 세팅해 동일한 맛과 향의 고품격 핸드드립 커피 맛을 내는 'A.I 핸드드립 Poursteady 머신'을 들여놓기도 했다.

또 제과제빵과 관련한 김 명장의 개인 박물관이 있고 진열장에는 '김영모 명장의 50년 레시피 파일'이 30여권 꽂혀있다. 김 명장은 60년 제빵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파일들을 누구에게나 공개하고 있다.

그는 "실컷 고생해서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든 레시피인데 감춰야지 나눠주면 어떡하냐는 얘기를 적지 않게 듣는다. 그럴 때면 우리 제과점 제품만 최고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다. 한국 제과제빵의 발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려준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명장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후진들에게 기술이나 노하우를 전달하는 게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충실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대한민국 명장 '사명감' 후학 양성에 관심
'몽블랑' 만들기 쉽지 않지만 특허 생각 안해
둘째 아들 동양인 최초 프랑스 제과명장 돼
동네빵집 소비자 취향 저격 쉼없이 노력해야


1993년에 개발한 몽블랑 레시피를 오픈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는 "몽블랑을 만들기까지 사실 쉽지 않았지만 특허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른 제품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제과점에서 노하우라고 생각하고 붙들고 있으면 확장성이 떨어진다. 공개하면 다른 곳에서 또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우리도 그 이상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 제과제빵업계가 성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인터뷰공감 김영모 제과명장28

김 명장은 또 같은 맥락에서 사회공헌과 후학 양성에 많은 관심을 두고 수원여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그는 "강의 나가면 강조하는 말이 있다"면서 "한 가지만 잘해도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꼭 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제과제빵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둘째 아들은 동양인 최초 프랑스 제과명장(MOF)이 됐다.

대한민국은 쌀밥이 주식이고 빵 하면 유럽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 본토에 한국 제과점이 진출하고 동남아 등지에서도 인기다. 한국 제빵의 발전 비결이 뭘까? 김 명장은 "열정"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한두 사람이 아닌 여러 명의 열정이 모여 제과제빵 분야의 기술 발전을 이뤄냈고, 자기 개발에 많은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지금의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밀려 동네 빵집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동네 빵집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김 명장은 "동네 빵집 문제는 어떻게 보면 예견된 일이었다. 대한제과협회 회장을 할 때 강의하면서 보면 개인제과점 윈도베이커리 운영자들이 과신을 하더라. 프랜차이즈는 많은 투자를 하고 새로운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반면 개인제과점들은 기존 제품에 안주하면서 새로운 제품 개발에 소홀했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이어 "그래도 서울 3대 빵집 등 지역마다 대표적인 제과점들이 지속적인 투자와 제품 개발을 하며 자리 잡았다. 하나의 과정이라고 본다. 우리나라가 좀 더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 획일적인 제품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며 "후배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개성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고 작지만 경쟁력을 갖춘 제과점이 늘어나고 있다. 프랜차이즈가 성업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비자 입맛을 맞추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공감 김영모 제과명장8

긴 세월 끊임없이 빵을 구워 왔고 지금도 굽고 있는 김 명장은 단순히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성공의 이면에는 빵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과 그 열정을 지탱하는, 지금 시대에 되짚어봐야 할 헌신과 배려, 책임과 사명감이 자리 잡고 있다.

성남/김순기기자 ksg2011@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김영모 명장은?

▲경력

1982년 김영모 과자점 운영
1998년 대한민국 제과 기능장 취득
2000년 수원여대 식품과학부 제과제빵과 외래교수
2003년 대한제과협회 회장
2006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심사위원
2007년 대한민국명장회 제과 명장, 프랑스 쿠프 드 몽드 제과대회 명예심사위원
2008년 파티시에 김영모 설립
2010년 혜전대학교 명예교수
2011년 제10대 대한민국명장회 회장
2012년 고용노동부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수상

2003년 노동부장관상
2005년 프랑스 제과협회 디플로마 및 메달 수여
2005년 미국 골드 리본 인터내셔널 쿡북 대회 '특별우수상'
2005년 대통령상 국민포장, 구어만드 월드 쿡북 어워드 '최고의 디저트 북' 수상
2006년 산업자원부장관상 수상
2007년 프랑스 농업 공로 훈장
2012년 은탑산업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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