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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다큐 감독으로 '10주년 디아스포라영화제 이끄는' 이혁상 프로그래머

김성호 김성호 기자 발행일 2022-04-20 제14면

"한국이민 120주년 되는 해… 인천 개항의 역사도 녹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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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영상위원회 앞에서 만난 이혁상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우리나라 공식이민 120주년이 되는 해, 인천이 가지고 있는 개항의 역사와 이민의 시작점이라는 것들을 올해 영화제에서 녹여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직 인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지만 알찬' 영화제인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올해 10주년을 맞는다. 2013년 1박2일짜리 작은 행사로 시작한 영화제는 지난 10년 동안 차근차근 성장해 어느덧 도시 인천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다음 달 20일부터 닷새간 인천아트플랫폼과 애관극장에서의 10번째 개막을 앞두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디아스포라영화제는 '공존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알려왔다.

영화제는 인천시민들에게 '디아스포라'라는 말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것이 적절한지 일깨워줬다. 특히나 디아스포라의 도시 인천에서 열리기에 영화제는 더 빛났다.

120년 전 100명이 넘는 한국인이 인천의 제물포항을 출발해 일본을 거쳐 하와이로 떠났고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항구와 공항을 통해 떠나고 또 들어온다. 인천은 문호를 개방한 이래 이주와 이민의 중심지였는데, 인천이 디아스포라의 도시라 불리는 이유다.



영화제가 10살의 나이를 먹는 동안 절반이 넘는 세월을 누구보다 아끼고 돌봐온 이가 있는데, 바로 다큐멘터리 감독인 이혁상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다. 10회째를 맞이하는 영화제의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그를 인천영상위원회(이하 영상위)에서 지난 18일 만나 얘기를 들었다.

5회부터 합류… 영상위 적은 인원으로 꾸려 개막식 날씨로 고생한 적도
코로나 영향 아트플랫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애관극장도 허락
영화제이후 스태프 정규직 전환 많아 안정된 상황에서 노하우 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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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알찬' 영화제인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올해 10주년을 맞는다. 올해는 다음 달 20일부터 닷새간 인천아트플랫폼과 애관극장에서 열린다. 사진은 회별 행사 모음. /디아스포라영화제 제공

- 디아스포라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제5회 영화제부터 프로그래머로 합류했습니다. 디아스포라영화제 초기에는 영상위가 적은 인원으로 고생하며 힘들게 영화제를 꾸려왔죠. 영화제를 새롭게 바꾸고 싶다며 합류해달라는 제안에 참여했습니다.

영상위는 해마다 전반기에 디아스포라영화제를, 하반기에는 지금은 사라진 인천다큐포트를 치러왔는데 다큐포트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참여한 저를 본 스태프들이 점찍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조선의 태양'이라는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일본의 재일 조선인마을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코미디 영화인데, 한국의 큰 디아스포라 역사 중 하나인 재일 조선인과 관련된 리서치나 취재를 준비하는 모습이 영화제와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맡은 일이 부산영화제였는데, 만약 영화제에서 일을 또 하게 된다면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어렴풋이 있었죠. 영화제의 어떤 성격과 색깔을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잖아요. 프로그래머라는 위치를 동경했던 부분들도 있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맞물리며 그럼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수년 동안 영화제를 치르며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18년 제6회 영화제였죠. 야외극장을 설치했는데, 개막식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천막에 물이 차면서 무너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나중에는 골조만 남았고, 영화제 식구들이 비를 맞으면서 수습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또 영화제 기간 인천 내에 정박한 배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수습해서 어쨌든 영화제는 개최했고요. 영화제를 치를 '공간'은 모두에게 늘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특히 인천아트플랫폼이란 공간을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환경으로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예산도, 품도 너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습니다.

관객들에게도 늘 죄송한 마음이었죠.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푹신한 의자가 아니라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였고, '사운드'도 좋지 않고 덥고, 어떤 분들은 그게 또 나름의 매력이라고 감내하시면서 즐겁게 보시는 분들도 있지만, 영화제에 대한 어떤 기대가 있으신 관객분에게는 불편함으로 작용하기도 했죠.

그러다 코로나19로 방역 당국의 결정 때문에 아트플랫폼을 떠나야 했고, 10주년을 맞으며 인천아트플랫폼으로 다시 돌아왔죠. 또 애관극장도 공간을 허락해줬고요."

- 지난 10년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그야말로 어떤 작지만 다양한 삶, 세상을 엿볼 수 있는 개성이 강한 영화제로 성장했다는 점을 자랑하고 싶어요. 수백 작품의 영화가 걸리는 대규모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 영화제는 이주의 경험이란 무엇인가를 잘 알려주는 좋은 영화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제를 잘 치를 수 있는 시스템을 계속 조금씩 구축해 왔다는 점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전에는 비정규직이었던 스태프가 영화제를 치르며 정규직으로 전환도 많이 됐고요. 너무 불안한 고용환경 속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된 상황에서 '노하우'를 쌓아가며 미래를 전망하면서 영화제를 기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들이 있어 영화제가 내실을 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혁상 프로그래머

- 올해 영화제는 어떻게 꾸며집니까.

"올해가 우리나라 공식이민 1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인천이 가지고 있는 개항의 역사와 이민의 시작점이라는 것들을 올해 영화제에서 녹여낼 예정입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한인들의 삶과 미국뿐이 아닌 전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 출신의 사람들 등 한국이민사 120주년 특별 기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디아스포라의 주제들이 가슴 아프고 슬프고 어두운 내용이 많아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볼 수 있는 영화를 감상하는 '시네마 피크닉' 섹션을 특별하게 꾸밀 예정입니다. '안녕, 낯선 사람?'이라는 부제인데요. 가볍게 다시 한 번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 할 만한 영화들을 준비했어요.

사실 디아스포라라는 의미를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낯선 존재를 만나는 삶을 삽니다. 문화적인 배경이, 국가적·지리적 배경이 다른 사람과 만나는 어떤 그런 과정이죠. 낯선 존재와 만나서 벌어지는 인간관계 자체가 디아스포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어떤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 그건 사랑일 수도 있고 어떤 우정일 수도 있고 또는 인생의 어떤 동반자에 대한 깨우침일 수도 있고요. 여기에 어울리는 영화를 모았습니다."

- 영화제를 찾을 관객을 위한 조언 한마디.


"사실 우리 모두가 이방인입니다.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죠. 물리적인 의미의 디아스포라도 있지만 정체성이라는 의미의 디아스포라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 낯선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이방인이고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곧 어떤 표준, '디폴트'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디아스포라영화제에 오시는 관객은 그런 기준을 제거하시고 오면 좋겠어요. 자신이 이방인이고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낯설 수도 있는 어떤 사람이라는 태도나 마음가짐으로 오시면 좋겠습니다.

영화제가 준비한 영화들이 모두 크고 작은 깨우침을 선물하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조금 열린 마음으로 영화를 보신다면 분명히 얻어가시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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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이혁상 프로그래머는?

▲ 미디어 액티비즘 단체 '연분홍치마'에서 다수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으며 2010년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으로 데뷔했다.
▲ 용산참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 후, 후속작 '공동정범'(2016)을 연출했다.
▲ 연분홍치마의 열 번째 다큐 '너에게 가는 길'(2021)의 프로듀서 및 편집감독을 담당했다.
▲ 현재 장편 극영화 프로젝트 '리틀 몬스터'를 준비하며 인천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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