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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일제강점기 강제 이주의 산증인…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 황예순·강정순·강춘자 할머니

김주엽 김주엽 기자 발행일 2022-05-04 제14면

한국땅에 돌아와… "꿈에도 그리던 가족들과 만났다"

공감인터뷰 인천사할린동포회관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

일제강점기부터 재일조선인 후세들의 삶을 다룬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는 고국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후발주자로 비교적 구독자가 적은 애플TV+를 통해 방영됐음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선자'와 '솔로몬'을 중심으로 한 가족들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압축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민사회의 현실을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천 연수구 연수동에 있는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도 65명의 선자와 솔로몬이 살고 있다. 이들은 선자처럼 일제강점기 러시아 사할린 지역으로 떠났다가 귀국한 사람들이다. 또 머나먼 고국 땅을 그리워하며 사할린에서 살아간 조선인의 후손 솔로몬과 같은 이도 있다.



지난달 26일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감인터뷰 인천사할린동포회관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지내는 황예순(81) 할머니는 "남동생이 돌도 채 되기 전에 아버지는 규슈에 있는 탄광으로 떠나게 됐다"며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는 아버지의 생사도 모르고 다시는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 고향 잊지 않고 산 황예순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소 외우게 해… 아버지와 다시 만날수 있어
父 규슈 탄광行 어머니도 생사 모른채 돌아가셔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만수리.'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지내는 황예순(81) 할머니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의 아버지 고향을 리(里) 단위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황예순 할머니의 어린 시절, 그의 할아버지가 수백 번을 넘게 외우게 한 지명이기 때문이다.

황예순 할머니가 3살이던 1942년 때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는 어린 그를 데리고 사할린으로 이주했다. 먼저 사할린에 일하러 간 아버지를 따라서 가족이 이사한 것으로 황예순 할머니는 기억했다.

1938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이후 일제는 '국가 총동원령'을 시행했다. 일본인과 조선인을 가리지 않고 젊은 청년들을 징집했다. 특히 벌목장과 탄광 등이 많았던 사할린 지역에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일제는 사할린으로 가면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조선인을 꾀어냈다.

황예순 할머니의 아버지도 사할린 탄광에서 일했다고 한다. 노동력을 수탈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은 급여를 받았지만, 황예순 할머니 가족들은 모여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가족이 함께 지낸 기간은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1945년 황예순 할머니의 아버지가 일본 남쪽 끝 규슈의 탄광으로 일자리를 옮기게 됐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사할린에서 일본 본토까지 물자 운반이 힘들어졌다. 일제는 사할린에서 일하던 조선인 1만여명을 본토의 각지로 강제 전출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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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순 할머니 가족과 아버지도 강제로 헤어지게 됐다.

황예순 할머니는 "남동생이 돌도 채 되기 전에 아버지는 규슈에 있는 탄광으로 떠나게 됐다"며 "아버지가 규슈로 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방됐지만, 사할린에서 우리나라로 가는 길이 막히면서 그곳에 계속 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는 아버지의 생사도 모르고 다시는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훔쳤다.

황예순 할머니의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헤어진 이후부터 고향 주소를 잊어버리지 못하게 외우도록 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갈 기회가 생기면 고향에서 아버지를 반드시 찾으라는 뜻이었다는 게 황예순 할머니의 설명이다. 그는 "할아버지 덕분에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를 고국 방문 행사에서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감인터뷰 인천사할린동포회관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10년 넘게 사는 강춘자(79) 할머니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학교도 다니고 평생을 살았지만, 마음 한쪽에는 '나는 조선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어머니도 소련 국적을 취득하라는 권유를 수차례 받았지만, 무국적자로 남아있다가 우리나라에서 눈을 감았다"고 했다.


사할린서 아버지·오빠와 헤어진 강정순 할머니
어머니가 꼭 돌아오고 싶던 고국생활에 만족하고 있어
큰어머니 초청으로 아버지 묘소 찾게 돼 '눈시울'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거주하는 어르신들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는 강정순(90) 할머니도 아버지·오빠와 생이별을 겪었다.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강정순 할머니는 11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 오빠, 남동생 둘과 함께 사할린에 갔다. 사할린 탄광에서 일하던 강정순 할머니의 아버지와 당시 21세였던 오빠는 규슈에 있는 탄광으로 전출됐다가 갑자기 해방을 맞이하면서 소련 땅이 된 사할린에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

결국, 사할린에는 할머니의 어머니와 동생 2명만 남게 됐다.

강정순 할머니는 "일본 사람들이 강제로 우리 아버지와 오빠를 데려가서 가족들이 흩어지게 됐다"며 "1991년 큰어머니의 초청으로 고향에 있는 아버지 묘소를 찾을 때까지 (아버지의) 생사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정순 할머니는 스물이 되었을 때, 사할린에 징용돼 온 조선인 남자와 결혼해 자녀들을 낳았다. 장성한 자식들은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카자흐스탄까지 흩어져 저마다 가정을 꾸려 살고 있다. 강정순 할머니는 남편이 사할린에서 세상을 떠난 이후 고국에서 남은 생을 보내기 위해 2006년 이곳에 입소했다.

그는 "홀로 우리 남매의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는 항상 고국에 살고 싶어 하셨지만,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1982년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러시아에 남은 자식들이 보고 싶은 것만 빼면 어머니가 꼭 돌아오고 싶었던 고국 생활에 크게 만족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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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는 강정순(90) 할머니는 "1991년 큰어머니의 초청으로 고향에 있는 아버지 묘소를 찾을 때까지 (아버지의) 생사도 몰랐다"며 "홀로 우리 남매의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는 항상 고국에 살고 싶어 하셨지만,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1982년 돌아가셨다"고 했다.


사할린 남동생 고국행 소원 강춘자 할머니
사할린에 있는 조선인 2세… 영주귀국하는 길 열렸으면
어머니 무국적자로 살아 특별귀국 혜택 받게 돼
인천사할린동포회관에서 10년 넘게 사는 강춘자(79) 할머니는 1942년 사할린에서 태어났다. 강춘자 할머니는 1999년 영주귀국한 어머니를 따라 2008년에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학교도 다니고 평생을 살았지만, 마음 한쪽에는 '나는 조선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어머니도 소련 국적을 취득하라는 권유를 수차례 받았지만, 무국적자로 남아있다가 우리나라에서 눈을 감았다"고 했다.

태평양 전쟁 이후 냉전으로 우리나라와 소련이 적대관계에 놓이면서 사할린에 남아있던 조선인들은 소련 국적 취득을 수차례 권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로 귀환을 바라던 조선인 1세대들은 강춘자 할머니의 어머니처럼 대부분 무국적자로 남았다고 한다. 국적이 없어 생활에 큰 불편을 겪었지만, 끝내 소련 국적을 선택하지 않았다.

강춘자 할머니는 "어머니가 소련 국적을 취득하지 않아 1991년 사할린동포 특별 귀국 혜택을 받아 고향인 대구에 남아 있던 외삼촌도 만나볼 수 있었다"고 했다.

강춘자 할머니의 소원은 아직 사할린에 남아 있는 남동생이 우리나라에 영주귀국하는 것이다.

1956년 태어난 강춘자 할머니의 남동생은 '사할린동포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규정된 사할린동포로 분류되지 않아 우리나라에 영주귀국할 수 없다. 해당 법안에선 1945년 8월15일 이후 출생자의 경우 부모가 국내에 생존해 있어야만 동포 혜택을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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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춘자 할머니는 "이곳에 남아 있는 많은 할아버지·할머니들이 형제·자매들과 생이별을 하는 상황"이라며 "사할린에 남아 있는 조선인 2세들도 우리나라에 영주귀국하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전했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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