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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토리] 억눌린 해외여행 '예약 러시' 수요 못따라잡는 항공업계

조수현 조수현 기자 발행일 2022-05-06 제10면

터미널에 '캐리어 행렬' 느는데… 활주로에는 '비행기가 없다'

텅 빈 여행사 창구, 늘어나는 공항 이용객<YONHAP NO-5351>
지난달 20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의 텅 빈 여행사 창구 옆으로 공항 이용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2022.4.20 /연합뉴스

"죽겠어요."

지난해 임대료도 메우지 못해 아르바이트로 힘겹게 사업체를 유지하며 질렀던 비명이 코로나19 방역대책이 완화되자 180도 다른 어조로 터져 나왔다. 행복한 비명이 된 것.

수원에서 신혼부부 대상 허니문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는 길모(53)씨는 해외여행 입국자 대상 자가격리가 해제된 지난 3월부터 오후 10시 이전에 퇴근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란다.

코로나19가 다시 폭증세를 보이던 지난해 11월 "방역조치가 강화되면서 예약이 모두 끊겨 매달 250만원씩 빠져 나가는 임대료를 메우기 위해 배달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죽을 맛"이라고 털어놨던 그는 최근 통화에선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180도 달라진 의미로 "죽겠다"고 했다.



길 씨는 "한 달에 한 건 정도 가뭄에 콩 나듯 예약이 있다가 3월 자가격리 제한이 풀린 이후 받은 신혼여행 커플이 100커플이 넘었다"며 "가족여행 문의도 점점 늘고 있는데 일손이 부족해 직원 구인 공고도 3년 만에 새로 올렸다"고 말했다.

해외 입국자 대상 7일 자가격리 의무 조치가 풀리고 해외로 가는 하늘길이 차츰 열리자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여행사로 몰리는 예약과 상담 문의가 폭증하고 있다.

수요는 많은데…공급은 적고
여행업계는 몰려드는 수요를 감당하느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수요에 발맞춘 국제선 공급량이 이를 따르지 못해 항공권 가격이 널뛰기를 하거나 원하는 시기에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국제선이 집중된 인천공항의 '일일 이용객'은 지난 2020년 3월 이후 2년여만에 처음으로 3만명대를 회복했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인천공항의 하루 이용객수는 3만974명으로, 이 가운데 도착과 출발은 각각 1만4천859명, 1만3천161명으로 집계됐다.
3월부터 자가격리 입국제한 풀려 여행사 '즐거운 비명'
티켓값 고공행진속 인천공항 하루 이용객 4만명 육박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전 세계 각국이 자국의 공항길을 차단하면서 일일 20만명을 기록하던 이용객 수는 지난해 3천명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 그래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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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공항 수요 회복 추세는 지난달 공항 이용객 숫자를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지난달 인천공항의 이용객 수는 64만9천753명으로, 도착과 출발은 각각 32만7천801명, 32만1천952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가 위세를 떨치던 지난해 같은 달 17만9천847명과 비교해 261.3% 증가한 수치다.

문제는 늘어나는 여행 수요에도 정작 이용 가능한 비행기 노선 수는 예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티켓 값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 인천공항에서 운항되던 국제선은 매주 4천500편이 넘었으나 5월 현재 500편이 조금 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수원의 한 여행사 대리점 대표는 "코로나 이전 하와이 항공권 가격이 150만원 선이었는데 지금은 200만원을 줘도 내년에나 갈 수 있는 수준이다. 유럽이나 동남아도 항공권 가격이 크게 3배 가까이 올랐다. 그래도 가려고 하는 소비자들이 넘친다"고 설명했다.

유가 상승도 항공권 가격에 영향을 주고 있다. 가뜩이나 비쌌던 기름값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 오르는데, 기름값은 유류할증료와 연동돼 항공권을 높이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티켓 구하기 위해 '오픈 런'까지
상황이 이렇자 지난달 에어서울이 국제선 운항 재개를 기념해 마련한 '동남아 왕복 10만원' 특가 프로모션 행사에 300m가 넘는 구름인파가 몰리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접이식 의자를 가져오거나 돗자리를 펴면서까지 긴 줄을 선 것은 단연 싼 가격에 비행기표를 구매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이 쿠폰을 적용해 결제하면, 유류세·공항세를 포함해 정상가 대비 최대 97% 할인된 10만원대에 괌·사이판·다낭·냐짱·보라카이 왕복 항공권을 이용할 수 있다. 선착순 1천명에게 제공한 이 쿠폰은 3시간 만에 동났다.

징검다리 연휴 앞두고 공항 '북적'<YONHAP NO-4590>
어린이날 '징검다리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4일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가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2022.5.4 /연합뉴스
 

항공권 등 여행 경비와 별개로, 과도한 PCR 검사비용도 여행객의 부담을 지우는 요소로 지목된다. 방역당국은 기내 감염과 변이 유입이 있다는 이유로 해외 입국자 대상, 출국일 기준 48시간 이내에 검사·발급받은 PCR 음성 확인서 소지를 의무화하고 있다.

특가 프로모션 행사 구름인파… 쿠폰 3시간만에 동나
PCR 확인서 과도한 비용에 불편… 제출의무 폐지 요구
코로나전 정상화 국제선 증편·도착슬롯 확대 등 필요

비용은 생각보다 만만찮다. PCR 검사 의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공항에 가서 검사를 받으면 개인당 10만원 안팎의 PCR 검사 비용을 내야 한다.

해외에서 국내로 돌아올 때도 PCR 검사가 필요한데, 여기에 드는 비용 부담은 더 크다.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등에서 받는 PCR 검사 비용은 많게는 275달러(35만원) 정도고,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의 경우 적게는 8만원에서 많게는 25만원까지 부담해야 한다.

여행에서 돌아와 코로나에 걸리면 더 낭패다. 코로나 특약을 포함한 여행자 보험에 들면 확진시 치료비와 입원비는 보장받을 수 있지만, 격리로 인한 숙박비와 식비는 보장받기 어렵다. 여행업계는 이러한 이유로 PCR 음성확인서 제출 의무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김광옥 한국항공협회 본부장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관광산업위원회에서 "여러 국가가 출입국 절차를 정상화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규제가 엄격해 비용 부담과 출입국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며 "PCR 음성 확인 절차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웃나라 일본·중국의 하늘길이 열려야…."
정부는 여행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코로나19로 감소했던 국제선 운항 규모를 올 연말 코로나 이전의 50%까지 회복하는 등의 '국제선 단계적 일상회복 방안'을 발표했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 변이인 오미크론으로 늘어났던 신규확진자수가 점차 안정화되면서 일상회복이 가능하다는 취지에서 이 같은 방안을 꺼낸 것이다. 첫 단계로 정부는 이달부터 국제선 정기편을 매월 주 100회씩 증편하기로 했다.
 

현행 인천공항의 슬롯(시간당 항공기 운항 횟수)은 10대 이하로 운행되고 있으며, 1단계 20대 2단계 30대 등 단계별로 10대씩 늘릴 계획이다.


당장 다음달 국제선 운항횟수는 620회로 증편된다. 

 

하지만 국제선 승객이 코로나19 이전으로 정상화되기 위해선 국제선 증편, 도착 슬롯 확대뿐 아니라, 운항제한시간과 검역절차 완화 등 코로나19 상황에서 시행했던 모든 규제를 해제해야 한다는 게 항공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항공권 가격 안정화를 위해 기존 국내 여행객들이 자주 찾던 일본, 중국 등의 활로가 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평소 이용객 수가 많았던 일본·중국의 지난달 인천공항 이용객 수는 각각 3만7천411명, 1만4천469명에 그쳤다. 안산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방모씨는 "국제선 항공권 가격이 오르는 건 수요가 폭증한 이유도 있지만, 자주 가던 일본 중국이 막혀서 수요가 분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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