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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이주민 화교, 이방인 아닌 이웃·(下)] '한국과 대만 국적 사이' 고민하는 젊은 화교들

유진주·한달수
유진주·한달수 기자 dal@kyeongin.com
입력 2022-08-30 20:27 수정 2022-08-30 22:17
인천시 중구 차이나타운 거리가 주말 나들이를 나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경인일보DB

한국 생활 '장벽' 3·4세대 정체성 혼란

화교에 대한 정책이 조금씩 개선됐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3·4세대 젊은 화교들은 대만 국적을 유지하면서 한국 생활을 하는 데 많은 불편함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차별과 배척은 많이 개선됐으나, 한국에서 일하고 일상을 보내면서 마주하는 '장벽'이 젊은 화교들에게는 또 다른 차별로 다가오는 것이다.

서울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화교 여민(30)씨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가장이다. 전통적인 중화사상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한 가정에서 자란 여씨는 그동안 한국 귀화를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가정을 꾸린 뒤로는 귀화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씨는 "호텔 중식 요리사로 일하다가 사표를 내고 가게를 차리기 위해 은행을 찾았는데, 화교를 비롯한 외국인들은 신용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감했었다"며 "일반 외국인들이야 대출이 필요하면 자국에서 받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지금껏 경제활동을 해오고 있는 화교들은 돈을 빌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차이나타운일대 DB
화교(華僑)가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마을을 이루고 정착해 살기 시작한 인천 중구 선린동 일대의 모습이다. 지금도 선린동 일대에는 중국식 주택이 많이 남아있다. /경인일보DB

신용대출·간편송금앱도 이용 못해
경제 자립시기 취업 제약에 속앓이

화교에게는 인터넷 금융거래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모(24)씨는 한국 젊은이들이 쉽게 쓰는 간편송금 앱도 이용하지 못한다. 한국 국적자만 가입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 한국 친구들은 모임통장을 만들어 돈을 주고받는데 이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니 돈을 따로 보내줘야 한다"면서 "친구들이 눈치를 주지는 않지만 매번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젊은 화교들이 귀화를 고민할 정도로 '차별·불편'은 여전하다. 취업에 제약이 많은 것도 젊은 화교들이 한국 귀화를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학에서 항공서비스업을 전공한 하씨는 "한국 항공사의 채용 공고를 보면 '한국 국적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을 아예 채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과 중국 관계가 나빠지면서 이마저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광안내사 등 관광분야 취업도 알아보고 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에 오는 중국 관광객이 거의 없어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으로 귀화하는 것도 고민했지만 귀화가 완료되기까지 최소 2년 이상 걸린다고 들었다"며 "경제적 자립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귀화를 준비하느라 시간을 쓰는 것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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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華僑)가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마을을 이루고 정착해 살기 시작한 인천 중구 선린동 일대의 모습이다. 지금도 선린동 일대에는 중국식 주택이 많이 남아있다. /경인일보DB

대만 갈 때도 비자 발급에 애먹어
"주류 열망 큰데 국적의 한계 느껴"

화교는 해외 출장·여행도 자유롭지 않다. 한국 국민과 대만 국민은 사증면제협정을 맺은 나라에 갈 때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다. 하지만 화교는 예외다. 사증면제협정에 있어서 화교는 한국 국민도 대만 국민도 아니다. 한국 화교가 비자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오직 한국뿐이다. 심지어 대만을 갈 때도 비자를 받아야 한다.

화교 강리청(26)씨는 "한국에서 일하며 해외 출장 일정이 잡히면 한국 동료들과 달리 미리 비자를 신청하고 심사를 기다려야 한다"며 "발급 절차도 매우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그럴 때 한국 국적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강씨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영주권도 얻었다.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서 살 건데 한국에 온 지 1~2년밖에 안 된 외국인이나 다름없는 처지라는 것이 늘 아쉽다"고 말했다.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은 "해외 이동 시 화교의 신분을 별도로 증명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게 항상 아쉽다"고 말했다.

이준화 서울화교청년상인회 회장은 "3·4세대 화교는 1·2세대와 달리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도 많아 (이전 세대보다 한국에) 친숙한 게 사실"이라며 "자연히 스스로를 한국 사회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고 주류로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도 큰데, 대만 국적의 한계를 느끼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3면([가장 오래된 이주민 화교, 이방인 아닌 이웃·(下)] 이웃으로 함께 하려면…)

/유진주·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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