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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빚다, 흥에 취하다: 우리동네 술도가를 찾아서·(19)] 가장 한국적인 막걸리 빚는 '봇뜰'

하지은
하지은 기자 zee@kyeongin.com
입력 2022-10-17 21:34 수정 2022-11-28 14:16

남양주 맑은 물에 취한 장인, 가양주 전통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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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남다른 전통주를 빚고 있는 양조장이 애호가들의 눈도장을 찍고 있다. 남양주시 진접읍에 위치한 막걸리 양조장 '봇뜰'의 이야기다. 봇뜰의 술맛에는 도전과 열정, 나눔과 배움이 숙성돼 있다.

전업주부에서 독학으로 가양주 '외길인생'을 걸으며 우리 술의 장인이 된 권옥련(63) 대표 인생의 혼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봇뜰에선 수십년 간 그 누구에게서도 배우지 않고 스스로 술 만드는 방법을 터득한 권 대표의 많은 시행착오가 녹아들어 주위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명품 가양주가 탄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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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뜰 권옥련 대표가 자신이 직접 개발한 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소연기자 parksy@kyeongin.com

■ 1인 규모 작은 양조장…명품 술맛의 비결 '누룩'


권 대표 혼자 운영하는 남양주의 작은 양조장 봇뜰에선 온전히 전통방식으로 가양주를 빚어내고 있다. 질 좋은 국내산 쌀만을 고집하면서도 일체의 감미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봇뜰만의 비결인 '직접 생산한 누룩'을 사용하며 손맛을 내기 위해 기계 역시 사용되지 않고 있다.



권 대표는 "술을 빚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저만의 누룩이다. 시간도 많이 들고 체력 소모도 크지만,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고대 문헌의 누룩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개선시키는 것이 그동안 제가 해오고 앞으로 할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봇뜰양조장에선 '십칠주'와 '봇뜰 막걸리', '봇뜰 탁주', '백수환동주', '이화주', '봇뜰 홍주', '사계절' 등 다양한 술이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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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사연을 지니고 있지만 권 대표가 깊은 애정을 갖고 수년간 가격도 올리지 않고 있다는 술은 자신의 첫 번째 가양주인 십칠주다. 17주 동안 숙성시키고, 알코올 도수가 17도라 붙여진 이름의 십칠주는 도수가 높지만 깔끔하고, 삼양주로 빚은 부드러움으로 많은 애호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또한 고문헌(양주방·1837년)에도 기록된 '백수환동주'는 '머리가 흰 늙은이가 도로 아이가 되는 술'이라 붙여진 독특한 이름의 술로 역시 권 대표의 손길을 거치면서 물이 첨가되지 않아 걸쭉하고 단맛이 강한 술로 재탄생하며 관심을 받고 있다.

'이화주'는 고려 시대부터 양반들이 즐겨 마신 최고급 탁주로 물이 첨가되지 않아 요구르트 같은 질감의 '떠먹는 막걸리'로 유명하다. 하지만 다른 술과 달리 쌀을 반죽해 물기를 짜낸 후 누룩과 함께 발효해서 만드는 등 봇뜰에서 제조되는 술 중 고된 과정을 겪으며 가장 빚기 어려운 술이라고 한다.

특히 '사계절'은 봄에 파종해 가을에 수확하는 벼와 겨울에 파종해 여름에 수확하는 보리로 누룩을 만들어 제조되면서 얻게 된 이름의 술로 권 대표가 2년간의 연구 끝에 올 초 시중에 내놓은 가양주다. 물을 첨가하지 않고 침전물의 20%를 제거해 가벼운 느낌의 맛과 향의 풍미가 강한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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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뒷모습에서 느낀 가양주의 매력…남양주를 만나 탄생한 양조장 '봇뜰'


권 대표는 유년 시절부터 술을 빚으신 친정어머니 덕에 가양주가 친숙했다.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늘 칭찬 일색이었던 어머니의 솜씨는 권 대표가 결혼한 이후 남편과 남편 지인들에게도 닿으며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술을 빚고 나누며 솜씨를 뽐낸다는 것, 또 술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매력을 느낀 권 대표는 전통주 연구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권옥련 대표, 감미료 없이 직접 누룩 생산
"다양한 맛 낼 수 있어… 고문헌보며 공부"
유년기 술빚는 어머니 모습에서 매력 느껴

그는 "정식으로 술을 배운 적이 없다. 연거푸 실패의 쓴맛을 보면서 금전적 손해를 보기도 했다"면서 "이후 도서관에서 문헌을 찾아보고 인터넷에서 가양주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무궁무진한 가양주의 세계를 만났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러다 술 동호회도 나가게 되고, 술에 대한 지식을 나누면서 더 많은 자료를 찾으려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전문가가 돼 있었다"고 술회했다.
 

직접 가양주 레시피를 연구하고 만들었던 권 대표는 이때만 해도 취미에 머물렀을 뿐, 술을 제조해 판매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주점을 차린 지인이 시중에 없던 제 술을 너무 좋아했고 판매를 원한다고 오랫동안 저를 설득했다. 그래서 면허를 내고 소량으로 '십칠주'를 제조해 판매를 시작했다"며 "이후 입소문을 타고 여기저기서 술을 찾는 손님들이 늘면서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양주에 정착하게 된 특별한 인연도 소개했다.

권 대표는 "지인이 사는 남양주 별내지역에 놀러 갔다가 너무 맑은 지하수 물을 맛보고, '이곳에서 술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면서 "당시 마을 이름이었던 봇뜰(보를 막아놓은 뜰)의 이름을 따 양조장을 개업하고 전통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별내지역 지하수 맛보고 양조장 세울 결심
당시 마을 이름서 상호 따와… 본격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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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직접 수입한 증류기계. /박소연기자 parksy@kyeongin.com

■ 쉼표 없이 달려온 '전통주' 인생…'인생·술' 공유하고 후배 양성·전통주 계승도 주력


봇뜰에선 '가양주를 빚는다'는 게 '역사의 가치를 되살리는 작업'으로 통한다. 그래서 작은 양조장이지만 후배 양성과 전통주 계승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 체험도 진행되는 등 인생과 술을 공유하는 인연의 매개체 역할도 하고 있다.

권 대표는 지난 2009년 전통주를 공부하는 지인들과 사단법인 '한국가양주협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지내며 다양한 가양주를 알리고, 고문헌의 전통주를 복원하는 데 매진하기도 했다.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엔 대학원과 지자체 등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특히 가양주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겐 '자신만의 레시피'까지 공유하며 전통주 나눔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가양주협회' 설립해 초대회장 역임도
"관심과 열정 가진 이 있다면 물려줄 생각"


권 대표는 "그동안 이익을 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술을 꾸준히 만들면서 좋은 인연들을 만났다고 생각한다"며 "봇뜰이란 상호로 술의 연구와 생산, 완제품까지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한 나름의 성과와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평했다.

이어 권 대표는 "어머니로 인해 가양주에 눈을 뜨고 취미로 시작한 게 여기까지 왔다. 나이도 나이인 만큼 폐업도 고려하고 있지만 가양주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가진 이가 다가온다면 그대로 물려줄 생각도 있다"면서 "이제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여생은 전통주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인생과 술을 나누는 게 제 작은 바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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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봇뜰에서 만드는 제품들

목넘김이 부드러운 '십칠주'
백발이 아이로 '백수환동주'
요거트처럼 떠먹는 '이화주'


# 십칠주


17주 동안 발효, 숙성해 빚은 탁주. 삼양주로 높은 알코올 도수에 비해 부드러운 목넘김. 가양주 고유의 맛과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술.(alc 17%, vol. 550㎖)

# 봇뜰 막걸리


높은 도수의 십칠주를 10도로 낮춘 술. 십칠주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술. 가볍고 새콤한 맛이 특징.(alc 10%, vol. 750㎖)

# 봇뜰 탁주


밀가루와 쌀가루를 혼합해 만든 백곡. 이양주로 막걸리보다 단맛이 강한 술. 봇뜰 제품들 중 가장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제품.(alc 10%, vol. 750㎖)

# 백수환동주


고문헌(양주방, 1837년)에 기록된 술. '머리 흰 늙은이가 도로 아이가 되는 술'이라 붙은 이름. 물이 첨가되지 않아 걸쭉하며 단맛이 강한 술(alc 12%, vol. 375㎖)

# 이화주


고려시대부터 양반들이 즐겨 마신 최고급 탁주. 물이 첨가되지 않아 요거트 같은 질감의 술 '떠먹는 막걸리'. 새콤한 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짐.(alc 12%, vol. 375㎖)

# 봇뜰 홍주


맑은술만 채주해 증류한 증류식 소주. 동재질의 상압증기류를 사용, 항아리에서 3년간 숙성시켜 부드럽고 깊은 감칠맛이 특징.(alc 45%, vol. 500㎖)

# 사계절


벼와 보리로 누룩을 만들어 제조. 물을 첨가하지 않고 침전물의 20%를 제거해 가벼운 느낌. 맛과 향의 풍미가 강한 술.(alc 12%, vol. 375㎖, 500㎖)

남양주/하지은기자 zee@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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