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자금은 하와이 동포들의 피땀이었다
지난 22일(현지 시간) 찾은 하와이 호놀룰루시 오아후 공동묘지에 묘비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오아후 공동묘지에는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초창기 한인 이민자 묘지 수백 기가 있다. 2022.12.22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
하얀색 묘비에 영어(MIN)와 한자(閔)로 성씨를 적은 독립운동가 민찬호(1877~1954) 목사의 묘지가 눈길을 끈다. 1905년 호놀룰루 한인감리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한 그는 하와이에서 이승만(1875~1965) 박사와 함께 동지회를 창립하고 교민단 총단장을 역임했다.
민 목사는 1909년부터 1945년까지 독립의연금, 군수금 등의 명목으로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으며, 정부는 이러한 공훈을 인정해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여성 독립운동가 김노디(1898~1972) 선생의 묘비에는 생전 사진이 붙어 있고, 그 옆으로 화병이 놓여 있었다.
김노디 선생은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14일부터 사흘 동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제1차 한인회의에 대의원으로 참석해 서재필(1864~1951) 박사에 이어 두 번째로 독립에 관해 연설했다. '신한민보' 1919년 5월6일자 기사에서 '비감한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 눈물을 옷깃에 적시었다더라'고 보도할 정도로 명연설이었다고 한다.
김노디 선생은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지난해 9월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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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열 관장은 "하와이에서 한인 남성 노동자 한 달 임금이 17달러 정도였고 필수 생활비를 빼면 3~4달러 정도만 남았는데, 매달 1달러 이상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냈다고 한다"며 "하와이에서만 1920년대까지 300만 달러의 자금이 모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거의 모든 교민이 독립운동 자금을 냈는데 증명하기 어려워 일부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게 아쉽다"며 "당시 교민 모두를 독립유공자로 봐야 한다"고 했다.
지난 22일 찾은 하와이 호놀룰루시 오아후 한인 공동묘지에 묘비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오아후 공동묘지에는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초창기 한인 이민자 묘지 수백 기가 있다. 2022.12.22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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