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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학교는 아프다

윤인수
윤인수 논설실장 isyoon@kyeongin.com
입력 2023-03-2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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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미국에서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1년 이상 가해자의 폭력에 시달렸다. 플로리다주 칼리어 카운티 법원의 판사는 정당방위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미국에서도 학교폭력은 골치 아픈 사회문제다. 툭하면 발생하는 학교 총기난사사건으로 교사의 총기 휴대론이 나올 정도다. 총기의 나라 미국에서나 가능한 판결이고, 여론이다.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문제도 심각하지만 미국식 해법은 제도적, 문화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 글로리' 같은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가해자를 응징하는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응징하는 조리돌림이 만연한다. 학폭 시비에 휘말려 미디어에서 사라진 연예인들이 한둘이 아니고,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후보 부자는 국회 청문회 대상이 됐다.

하지만 성공한 가해자를 매장하는 사회적 응징이 통쾌할진 몰라도, 무너진 학교의 현실을 개선할 대책일 수는 없다. 최근 교육부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은데 이어 '교육활동 침해행위 및 조치 기준 고시'를 개정했다. 학폭 대책의 골자는 가해 학생의 처벌 기록을 학생부에 철저하게 기록하고, 대입 전형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학폭 가해 학생은 대학 갈 엄두를 내지 말라는 얘기다. 정순신 사태가 제도 개혁의 기폭제가 됐다.

오늘부터 시행되는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 고시의 핵심은 교권 강화다. 학생이 교사의 지도를 무시하고 수업을 방해하면, 최악의 경우 퇴학 조치까지도 가능하다. 미디어가 고발한 교권 붕괴 현장은 참혹하다. 희롱하는 학생들에 둘러싸인 여교사, 학생의 폭행에 쓰러지는 선생님들이 한둘이 아니다. 학생인권으로 무장한 악동들이 선생님을 유령 취급하며 교실을 지배해도 대응할 수단이 없다.



대학 진학 장벽과 교권 강화로 학교 폭력을 막고 학교를 정상화하겠다는 교육부의 구상은 가상하다. 그런데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흘렀다. 경기도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지도 10년이 넘었고, 교권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가 넘친다. 모두 제대로 작동했다면 지금처럼 학교가 망가져선 안 됐다.

사건과 여론과 시류에 쫓겨 남발한 법과 제도 때문에 학생인권과 교권과 학교행정이 따로 놀고 있다. 그래서 학교는 늘 아프다. 총기 허용 국가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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