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참성단] 홍콩발 ELS 사태

윤인수
윤인수 논설실장 isyoon@kyeongin.com
입력 2024-02-04 20:03 수정 2024-02-04 20:05

2024020501000039700002371

"광기의 가장 큰 징후는 금융상품이 복잡해지고 사기가 증가한다는 것이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에 나오는 대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은행들이 남아도는 유동자금을 부동산 담보대출에 쏟아부으면서 시작됐다. 치솟는 부동산가격에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은행 돈으로 집을 샀다. 은행들은 채권으로 파생상품을 팔아 자금을 모아 다시 대출했다.

이때 부동산 시장 몰락을 예상하고, 부동산 채권 폭락 때 돈을 버는 공매도(Short)상품을 개발한 사람들이 '대박 공매도', 즉 '빅쇼트'의 주인공들이다. 영화의 대사 중엔 금융 파생상품에 대한 경고성 금언들이 즐비하다. "아무도 관심 없어요. 은행들은 판매수수료를 거하게 챙기고 있는데, 채권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홍콩H지수에 기초한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생돈을 날렸거나 날릴 위기에 처했다. H지수는 홍콩증시에 상장된 중국 대표기업 50개 종목의 주가지수다. 투자 시점의 홍콩H지수가 만기시 30% 가량 떨어져도 원금이 보장되는 ELS 상품을 증권사가 운용하고 은행이 판매했다. 그런데 지수는 절반 이하로 폭락하고, 만기가 도래했다. 올해 상반기 만기도래 금액 10조2천억원이 반토막이 날 상황이란다.

은행에서 ELS를 산 고령 개미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은행을 자산 보전과 증식의 반려 기관으로 철석 같이 믿었던 세대들이다. 2일까지 금융감독원에 3천건에 달하는 민원이 쏟아졌다. 안전한 고수익 투자라는 은행의 설명을 믿었다는 피해자들의 호소는 절규에 가깝다.



파생상품은 예적금과는 다른 전문가들의 고위험 투자 대상이다. 콜옵션, 풋옵션 등 상품의 손익을 설명하는 용어들은 외계어나 다름없다. 일반 투자자들은 은행에서 파는 상품이니 최소한의 원금보장을 확신했을 테다. 은행은 '오래된 고객'의 신뢰를 ELS 판매 수수료와 바꿔 먹었다.

고객들이 독박을 써도, 은행엔 수수료가 남고, 방지 대책을 세운 증권사의 손실은 미미하단다. 예대마진으로 수십조 영업이익을 올리는 은행들이 수수료 몇푼 먹자고 벌인 짓의 결과가 참혹하다. 금감원의 조사와 제재, 고객들과 법정 분쟁이 예상되자 은행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대형로펌과의 계약이라니 이런 밉상이 없다. 법을 떠나 감정이 앞선다.

/윤인수 주필


# 키워드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