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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쏘공' 찍었다면 이랬을까… 생생한 소설 한컷

박경호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입력 2024-02-12 18:53 수정 2024-02-12 18:54

[전시리뷰] 사진으로 읽는 인천 근현대소설


윤정미 작가 원작 재해석… 30여점 선봬
한국근대문학관 기획… 일종의 메타픽션
산업화 등 도시역사 주제… 4월 28일까지


사진으로 읽는 인천 근현대 소설
'사진으로 읽는 인천 근현대 소설' 전시장 모습.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인천을 다룬 근현대 소설을 사진으로 재해석한 사진작가 윤정미의 전시가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 '사진으로 읽는 인천 근현대 소설'은 윤정미 작가가 한국근대문학관과 함께 선정한 소설 15편을 읽고, 그 소설 속 인상 깊은 장면을 선정해 사진 등으로 연출한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모두 신작이다.

작가는 소설에 대해 조사하고 탐구하는 '내재화' 과정을 거쳐 장면을 만들 장소·배우·소품 등을 직접 구상하고 준비했다고 한다. 각 작품은 일종의 프레임 안에서 구현한 '메타픽션'(Metafiction)처럼 보였다. 윤정미 작가는 젠더에 대한 질문을 던진 '핑크&블루 프로젝트'로 국내외에서 널리 알려졌다. 2013년부터 근대소설을 각색한 사진 작업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대한 김명석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글을 먼저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김명석 교수는 "이번처럼 소설을 사진으로 각색하려는 시도는 문자 텍스트를 시각적 매체로 재창조하려는 새로운 욕망을 보여준다"며 "이번 전시회에 나온 사진과 소설을 비교하며 원작에 대한 '충실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해조의 신소설 '빈상설'(1907)을 주제로 한 작품 '빈상설 01'이 이번 전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원작의 시대 배경이 아닌 '현재'의 어두운 밤 건물 옥상이 배경이다. 흰 한복을 입은 여인이 여기저기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고, 옥상 너머 도시의 불빛들이 보인다.

120여 년 전 신소설 '빈상설'은 못된 첩(평양집)으로 인해 착한 본처(이난옥)가 고난을 겪지만 결국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첩을 두는 당시 양반의 행태를 비판하고, 신분제 폐지나 신교육 주장 등 계몽적 주제를 다뤘다. 소설만 생각하면 윤정미의 '빈상설 01'이 낯설다.

이에 대해 김명석 교수는 "도시에 표류한 여성을 추모하는 듯하다"며 "전통과 근대 사이 희생된 여성들을 바라보고 있는 120년 전 소설가 이해조와 근대 인천을 찾아온 사진작가 윤정미의 대화의 장"이라고 했다.

사진으로 읽는 인천 근현대 소설
윤정미 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한국근대문학관 제공

우리가 익숙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5)을 작가는 거의 다 철거된 집터에서 작은 밥상에 밥을 차려 먹는 지친 표정의 가족을 찍었다.

전시작 중 가장 크기가 큰 사진(100×133.3㎝) 속 철거 현장의 무자비한 디테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난장이가 등장하지 않는 이 사진은 원작과 다르면서도 작가의 시선으로 원작의 분위기나 메시지를 전한다.

사진으로 읽는 인천 근현대 소설
윤정미 作 '모두깜언'. /한국근대문학관 제공

전시 작품이 다룬 주제는 근대화, 산업화, 바다, 이주·이주민, 노동(동일방직 담벼락), 여성 등으로 인천의 도시 역사를 품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다소 어둡고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는 작품 가운데 강화도를 배경으로 한 김중미의 성장소설 '모두깜언'(2015)을 담은 사진은 소설처럼 따스하고 푸르다. 작가는 '매직아워'(magic hour·일출 또는 일몰 직후 촬영)에 소설 배경인 강화군 양도면의 한 농촌에서 작업했다. 전시는 4월28일까지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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