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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셋 키우며 모은 전세금 날릴 판"… 법 테두리 밖 '위기의 가족'

백효은
백효은 기자 100@kyeongin.com
입력 2024-04-24 19:40 수정 2024-04-24 19:51

미추홀구 A씨 1억5천만 잃을 위기
채권 선순위 밀려 보증금 못받게돼
LH임대 자격 받았지만 적금 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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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있는 A씨의 현재 거주지 냉장고에 법원 서류들이 부착되어 있다. 2024.4.24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A(47)씨는 남편과 지난 10년간 삼남매를 키우며 모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 1억5천여만원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아이 낳고 산후조리원에 갈 돈도, 아이들 돌 사진 찍을 돈도 아끼며 악착같이 모은 돈인데…."

2021년 10월부터 인천 미추홀구 도화동 한 전셋집을 얻어 산 A씨는 지난해 11월 집주인 건물이 통째로 경매로 넘어간다는 인천지방법원의 통지문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삼남매를 키우며 알뜰살뜰 모은 보증금을 잃게 될까 두려웠다. 이 건물은 2~5층이 고시원(20호실)이고, 6층은 A씨 가족이 사는 전셋집이다.



A씨는 인천지방법원 경매계로 급히 전화를 걸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채권 선순위 관계에 따라 소액 임차인인 고시원 20호실의 전세보증금(3천만~5천만원)을 먼저 변제하고 나면 A씨가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A씨의 전세보증금이 인천지역 소액 임차인 기준인 1억원을 넘어 그의 변제 순위는 뒤로 밀렸다.

A씨는 전셋집 계약 당시 건물에 10억여원에 달하는 거액의 근저당이 잡혀 있는 것을 보고 도장을 찍어야 할지 망설였다. 그는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첫 입주자인 자신이 보증금을 가장 먼저 돌려받을 것이라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에 안심했다고 한다.

A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난달 6일 인천지방법원에 배당이의 소를 제기했다. 또 집주인과 의심스러운 세입자 5명을 사기죄·경매방해죄로 경찰에 고소했다. 집주인과 이 세입자들이 한통속인 것 같다는 A씨는 "고시원 일부 세입자가 6평 정도로 작은 규모의 고시원에 시세보다 높은 금액으로 전세 계약을 한 것을 보면 집주인이 가짜 임차인을 들인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전입신고일자와 확정일자가 한 달이나 차이가 나는 세입자, 배당요구서에 기재한 주소와 실제 거주지가 다른 세입자, 경매가 임박한 시점에 계약한 세입자 등을 '가짜 임차인'으로 의심했다.

이에 대해 건물주 B씨는 "사정이 안 좋아져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며 "다 나를 믿고 계약한 사람들이고 가짜 임차인을 들인 적 없다"고 해명했다.

전세보증을 떼인 A씨는 '전세사기 특별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국토교통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요건 중 '임대인에 대한 수사 개시 및 임대인의 기망행위 입증'과 '다수의 피해자 발생' 등 2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서다.

당장 다섯 식구가 살 거처를 마련하는 게 막막했던 A씨는 다행히 경매 진행 중에 신청해 둔 LH 다자녀 전세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자격을 얻어 그나마 한시름 놓았다. 보증금을 마련하려고 세 아이의 보험 적금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던 A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A씨는 "경매가 시작되고 나서도 보증금을 꼭 돌려주겠다던 집주인의 말을 바보같이 믿었다"며 "전학을 가야 하는 초등학생 막내 딸과 등하굣길이 멀어진 중·고등학생 두 아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미추홀구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생계가 어려워진 경우에는 국토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을 받은 뒤 인천시에 긴급생계비를 신청할 수 있다"며 "지자체의 긴급 복지 지원 요건은 실업, 폐업, 화재 피해 등을 기준으로 정하고 있어 A씨 가족에게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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